[오피니언] K-POP 아티스트로서 헤드라이너가 된다는 것 [음악]

음악을 나누고픈 아티스트의 이데아는 어디일까
글 입력 2024.09.1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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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이돌 산업에서 제일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면, 나는 이 키워드를 꼽고 싶다. 바로 ‘헤드라이너’다. ‘헤드라이너’라 함은 여러 가수가 참가하는 페스티벌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말한다. 즉, 누가 들어도 알만한 간판스타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로라하는 해외 페스티벌들의 헤드라이너 목록에 아주 익숙한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블랙핑크라던가, 아이브라던가, 스트레이 키즈 혹은 세븐틴이라던가.


페스티벌이 낯선 사람이라면 이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을 수 있다. 이제 K-POP 아이돌들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니까. 나도 초반에는 그러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이름의 무게는 단순히 게스트나 유명 인사로 끝나는 게 아니다. 맨 마지막에 등장해 유종의 미를 장식할 만한, 그러니까 ‘입증된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타 캐스팅과 궤를 달리한다. 대체 무엇을 보고 이 역사 깊은 페스티벌들이 이들을 헤드 라이너로 초청했을까. 또 언론과 대중들은 대체 왜 이들이 헤드 라이너가 됐다는 점을 그렇게나 영광스러워할까.


단순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대에 초청되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럴 수 있지만, 페스티벌의 무대는 규모로 환산되는 시상식 무대나 콘서트와는 전혀 다른 결을 띈다. 웅장하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소리를 가둬주는 콘서트홀이 아닌 야외에서도 먹힐 수 있는 라이브 실력은 기본으로 가져야 하고, 팬덤이 아닌 불특정 다수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만큼 패기롭게 본인의 무대를 선보여야 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여유도 보여야 한다. 아주 독한 퀘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근데 이를 다 해낼 수 있는 한국의 아티스트로 인정해 주는 것이니 그 어떤 아티스트가 이를 꿈꾸지 않을 수 있을까.


실제로 이미 글래스턴베리, 롤라팔루자, 코첼라와 같은 유수의 해외 페스티벌은 국내 아티스트들에게 ‘꿈의 무대’가 되었다. 나는 이 ‘꿈의 무대’가 한국 음악씬에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기에 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의미란, 내가 음악을 사랑했던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알 수 있다.


 

 

음악 방송은 어쩌다 일주일이면 끝이 나게 되었나


 

K-POP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아티스트를 불문하고 매번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바로 컴백 무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상파 3사, 그리고 공중파가 새롭게 연결된 이후로는 Mnet까지 총 4개의 음악 방송을 안방 1열에서 정기 순회하며 애타게 기다렸다. 그리고 Next Week에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얼굴이 뜨는 순간의 희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들이 매번 새로운 컨셉과 ‘헤메코(헤어, 메이크업, 코디)’를 장착하고 무대 위에서 새로운 빛을 낼 때마다 나는 황홀해했고 그 감정은 그들이 마지막 사전 녹화를 마칠 때까지, 그 시절로 따지자면 약 한 달간 지속됐다. 그 과정과 무대들을 즐기다 보면 금방 또다시 다른 아티스트가 얼굴을 띄우며 컴백을 예고했다.

 

그야말로 그 당시 음악 방송은 ‘별들의 전쟁’이었다.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주요 스케줄이었고 활동 기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그 무대 위에 할애했다. 그게 당연했고, 응당 그래야 했다. 그 무대 하나를 따내기 위해 그 많은 매니저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업계에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고, 점점 아이돌 산업이 세계화되어 갈수록, 상암과 일산은 그들에게는 점점 작은 무대가 되었다.

 

아이돌은 낭만과 환상을 실질적인 화폐로 환전하는 직업이다. 그 규모가 커질수록, 무대 또한 커져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어느덧 영화 촬영장 뺨치는 세트장을 준비해야 하는 게 기본이 되어버린 음악 방송은 컴백의 연례 행사 정도가 되었고, 그들의 연중 타임 테이블에는 비어버린 음악 방송의 횟수와 기간만큼 투어와 콘서트가 자리했다. 소속사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음악 방송의 시스템이 절대 흑자가 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은 음악 산업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사기업의 목적인 ‘수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보장되는 순간 다른 행사나 공연, 투어를 도는 게 맞았다.


그러니 음악 방송이 ‘홍보’의 기능에 충실해지기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대라는 것이 사실 ‘실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K-POP 시장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아이돌 세계에서는 더욱 그랬다. 무대미술, 그래픽, 카메라, 비주얼, 퍼포먼스,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하모니가 되어야 하는 것이 무대였다. 그중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는 관점의 문제이지만, ‘홍보’이자 ‘인지도 상승’, 혹은 ‘팬 서비스’의 일환이 되어버린 음악 방송에서 ‘라이브’는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선택적 요소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사견을 덧붙이자면, 지극히 개인적으로 ‘들리는 것’보다는 더 자극적인 감각인 ‘보이는 것’에 점점 더 몰두하고 집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 또한 음악 방송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가수의 라이브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아티스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음원을 매번 편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연스럽게 의상과 무대, 안무로 눈길이 갔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가 만연해 갈수록 어째서인지 대중은 본질에 집중했다. 대중이 집중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본인의 노래를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발생했다. 자연스럽게 ‘노래도 못 하면서 무슨 가수야?’, ‘춤만 추면 그게 댄서지, 무슨 아이돌이야?’하는 의문들은 하나둘씩 커져갔고, 이는 다시 ‘검증’의 시발점이 되었다. 립싱크를 일종의 기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여튼 대중들은 참 검증하는 것을 좋아한다. 증명하고, 반박하고, 논쟁을 벌이는 것들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검증에 성공했을 때, 크나큰 희열을 느낀다. 그러고는 또다시 논쟁을 벌인다. 어쩔 수 없이 가수는 이 속에서 ‘나 잘해요’를 증명하기 위해 다시 라이브를 살려내기도 하고, 따로 콘텐츠를 제작해 증명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라이브’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입증할게요, 더 큰 무대로


 

그 속에서 본인이 ‘진짜 중의 진짜’임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음악 방송에서의 라이브는 기본, 여기 작은 물 말고 큰 물에서도 먹히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점점 열리기 시작했다. 바로 해외 방송 무대였다. 단순한 해외 방송은 아니고, 자격증으로 따지자면 공인 자격증과 같이 그 이름이 증명된 곳들이었다. 그곳에 오를 때, 아티스트의 이름표 뒤에는 태극기가 달려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부분 현지 밴드 세션이나 쌩 MR을 깐 라이브를 추구했다. 그러니 그곳에서 호응을 이끌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는 대중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사실 해외 진출의 제일 큰 이유는 내수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해외 방송 무대가 가지는 의의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는 또 다른 차원의 ‘국뽕’을 제공할 수 있는 계기였다. 한국의 음악 장르를 그들이 세계 무대에서 증명하는 셈이기 때문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시가 원더걸스다. 원더걸스가 한국 가요 역사상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연예가중계가 전할 때 대중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드디어 K-POP이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원더걸스는 유명세를 제하고서라도 국가적 귀빈이 되어있었다. 이제는 조금 잊혔을지라도, 이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BTS와 블랙핑크 외에도 NCT, 세븐틴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지미 키멜쇼, 켈리 클락슨쇼, 더 레이트 레이트 쇼, MTV에서 무대를 진행하며 해외 방송에서도 성공적으로 K-POP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적나라한 음향에서 들려오는 라이브 실력은 덤이었다. 국내의 인정을 넘어 해외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K-POP의 색깔도 덩달아 변해갔고, 어느덧 K-POP은 세계에서 꽤나 유명한 장르가 되어버렸다.

 

아티스트들은 이제는 국내 판매량이 아니라 해외 판매량으로 인기를 입증했다. 언어가 다른 해외에 팬덤을 만들어 냈다는 건 그 무엇보다 명확한 입증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세계 어딜 가나 당당하게 BTS와 블랙핑크를 말하게 되었고, 덕분에 해외 음악 방송은 곧 누군가의 꿈의 무대가 되었다. K-POP이 검증의 대상에서 알리고 싶어진 존재가 된 것이다.

 

그때는 빌보드에 올랐으니 되었지, 전 세계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좋아하다니 되었지, 하며 커리어의 종착점이 보인 듯했다. 그러나 음악씬은 깊었던 역사만큼 이 무대를 해낸 아티스트들은 더 넓고, 또 다른 무대에 눈을 돌렸다. 증명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엔 즐기는 자가 제일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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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22년도 무렵부터는 새로운 무대의 영역이 열렸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니 유수의 해외 음악 페스티벌이 국내 아티스트를 헤드라이너로 섭외하기 시작했다. 조회수 약 8천만 회를 찍은 전설적인 블랙핑크의 ‘코첼라’ 무대가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 영상으로 대중들은 블랙핑크가 세계적인 아티스트임을 인정했다. 그 영상에 담긴 건, 뛰어난 라이브 실력도 있지만 그 큰 무대와 청중을 압도하는 무대 장악력이었다. 그리고 그 청중은 팬덤이 아니라, 그야말로 현지의 관객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잘 부르는 아티스트’를 넘어 ‘잘 즐기고 교류하는 아티스트’가 살아남는 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솔직히 아직도 아이돌 산업에서는 앨범 판매량, 스트리밍 횟수가 중요한 기록이자 성과임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는 무대 장악력보다는 비주얼, 음악성이 제일 깊게 관여되어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숫자로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순간의 열기와 함성, 말이 아니더라도 음악이라는 공통된 언어 아래에서 통하는 눈빛들. 예전 같았으면 아이돌이 무슨, 하고 무시했을 법한데도 꾸준히 나아간 곳에는 또 다른 무대가 있었다. 실력파임을 검증하기 위해, 명성을 쌓기 위해 나아간 곳에서 보게 된 새로운 모습은 한국 아이돌 산업에 있어서 절대 빼놓으면 안 될 가치를 알려주었다.

 

붉게 지는 노을, 혹은 짙은 밤하늘 아래에서 음악으로 소통하는 모습, 국적 불문하고 하나가 되어 뛰노는 모습을 그 어떤 아티스트가 그리지 않았겠는가. 모르는 아티스트의 음악이더라도 마음에 들면 뛰어놀 수 있는 곳, 그곳이 이제는 국내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이데아가 되었다.

 

결국 그들이 음악을 하는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헤드라이너는 현재 그들의 모든 추구 지점의 이상에 맞닿아 있다. 더 많은 사람과, 더 가까이서 교류하고 싶다면 그 누가 헤드라이너를 거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건 K-POP의 눈물 나는 성장 서사다. 한 단계 한 단계,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 세대를 거쳐 차근차근 밟아온 과정의 결실이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그 속에서 잡음도, 환호도 끊기지 않겠지만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점점 큰 무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러기 위해 아직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많고, 일각에서 누군가는 이를 보고 국내 아티스트가 왜 해외에서 더 많이 활동하려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수렴해야 할 소중한 목소리임을 알아야 한다. 어찌 됐든 가수는 팬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그 팬들은 그들이 시작했던 그곳에서 언제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헤드라이너, 정말 낭만적인 단어다. 과연 이다음 타이틀로는 어떤 단어, 어떤 무대가 등장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한국의 자랑스러운 아티스트들이 세계의 모든 무대를 누비며 세상과 소통하는 헤드라이너가 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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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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