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중에서 널뛰는 광대와 같은 해금 연주 - 수림뉴웨이브 2024 - 獨波(독파)

홀로 외로운, 그래서 아름다웠던 연주
글 입력 2024.09.1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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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문화재단 주최로 매년 진행되는 대표 한국 전통 음악 축제 ‘수림뉴웨이브’가 막을 올렸다. 매년 새로운 주제를 선정하는 이번 축제의 올해 키워드는 ‘독파’, 홀로 자신만의 음악적 물결을 만드는 예술가를 의미하는 단어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에 맞게 신진 예술가의 음악을 주로 선보이던 이전 시즌과 달리 이번에는 활발히 활동 중인 중견예술가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작은 목소리의 힘을 표방하는 해금 연주가 김현희 씨의 무대를 보고 왔다. 오롯이 한 명의 예술가가 쌓아온 음악적 세계에 집중하는 것이 이번 축제의 목표인 만큼, 평소 단독으로 연주되는 일이 많지 않은 해금의 가락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김현희 연주가는 가느다란 두 가닥의 줄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아래를 든든하게 받치는 몸통이 있는 해금과 참 닮은 사람이었다. 잠깐 보아서는 부드럽고 여린 사람 같았지만, 자신만의 신념과 해금이 지닌 매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강단 있는 사람임을 연주의 중간 중간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해금은 상단부의 두 줄 사이에 활대를 끼워서 연주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바이올린이나 기타와 같이 지판이 있는 모습이 아닌 공중에 줄이 띄워져 있다. 손을 짚는 미세한 위치에 따라 무한한 폭의 음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이쯤 줄을 누르면 보통 이정도의 소리가 난다’는 보장된 공식이 없어 연주가의 기량과 상황 대처 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악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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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그 누구보다 해금을 사랑하는 듯 보였던만큼 완벽주의자로 느껴질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지금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김현희 연주가의 해금 연주에서는 공백 없이 풍부한 일종의 물결이 느껴졌다.


음과 음 사이가 떨어지는 법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면서도 때로는 비명처럼 들릴 정도로 애절하게, 또 때로는 묵직하고 따스한 소리를 내며 한 악기에서 나온 소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화음이 펼쳐졌다. 분명 독주인데 오케스트라 합주를 듣는 것만 같았다.


사실 해금을 독주로 선보이는 것이 김현희 연주가에게도 일종의 도전이었다고 한다. 해금은 보통 장구와 같은 타악기의 반주와 함께 연주되어야 풍부한 고저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무대 만큼은 김현희 연주가 홀로 해금 하나를 들고 나와 외롭고도 그래서 아름다운 연주를 선보였고, 그리하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림이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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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로 이번 무대는 참 독특했다. 반주를 넣어줄 타악기의 부재 외에도 소리를 증폭 시켜줄 마이크나 스피커 등 별도의 어떠한 장치도 없이 오롯이 해금이 내는 자연적인 소리에만 집중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고, 그렇기에 연주가의 호흡,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 뿐 아니라 관객들이 내는 작은 소음들 까지도 무대를 만들어가는 일부분이 되었다.


무대 구성 또한 단출한 듯 보이지만 다채로운 소리를 낼 수 있는 해금을 닮아 있어 인상적이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예술가가 앉아서 연주를 진행하는 작은 단상과 그 주위를 반원 모양으로 둘러싼 객석으로 단순한 구성인 듯 보이지만, 그 주위를 채워주는 소소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가령 예술가의 단상 뒤쪽을 장식한 동양풍 자개 장식의 병풍 구조물이라던가, 한쪽 벽면을 채우며 걸려 있는 거문고 모양 장식들이 이번 축제의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홀로 외롭고도 고난한 연주를 이어가는 예술가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조명이 어두울 때는 예술가가 드리우는 그림자마저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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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소개하는 문구로 왜 ‘작은 목소리’를 내걸었는지에 대한 진행자의 물음에 김현희 연주가는 대학시절 즉석 섭외로 자유롭게 이어졌던 한 선배의 버스킹 장면에 대한 회고를 꺼냈다. 그 선배는 초반에 같이 연주하려는 사람이 없어도 꿋꿋이 홀로 연주를 하며 동료를 모으곤 했는데, 저렇게 혼자서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고, 언젠가는 본인도 그런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강인함을 지닌 그녀의 연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은 후반부에 선보인 ‘줄놀이’였다. 해금의 줄을 가로로 놓아보면 광대 목숨을 걸고 오르곤 했던 외줄 타기의 모양과 비슷해진다. 지판이 없어 기댈 곳 없이 공중이 떠있는 해금의 줄 위로 손가락을 얹는 연주가의 마음도 광대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줄놀이’를 연주하는 김현희 연주가의 표정에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믿고 완전히 뛰어들어 몰입할 수 있는 그녀의 자신감과 해금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외줄 위에서 널을 뛰는 광대처럼 여러 고저의 음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어떠한 큰 물결을 그리는 듯한 그 풍부한 가락은 이번 무대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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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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