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Zen의 정신과 감각 수집 [여행]

교토에서 온 편지
글 입력 2024.09.1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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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다’라는 말의 뜻이 문득 생경하다.

 

思 생각 사, 惟 생각할 유. 한자를 찾아봐도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생각이라는 건 나의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인데, 결국 모든 것은 태어날 때부터 내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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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수국이 산책로를 따라 즐비한 길을 걸으면 비에 젖은 풀 향기가 코에 흘러 들어온다. 감각된 정보들이 나에게 집약되고, 또 지리멸렬하게 떠다니던 잡생각들은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낸다. 교토로 여행을 가면 꼭 철학의 길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다.

 

더러운 물을 가장 빨리 정화하는 방법은 담수를 계속해서 공급해 주는 것이다. 낯선 풍경을 훑어내고, 두 발로 지반을 딛고 걸어간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내 안은 맑아진다. 그래서 우린 내 안의 나를 찾기 위해 더 넓은 외부 세상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작은 감각들을 스쳐 가는 무위의 수행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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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코, 혀, 귀, 몸, 뜻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깨달아 진여자성을 알지만 이것은 그 어떤 것에도 물들거나 더럽혀지지 않는다.” <육조단경>

 

너무 많은 감각 혹은 정보는 오히려 독이 될 때가 많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을 알고, 꼭꼭 씹어 음미할 수 있을 때 탈이 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정갈하게 담긴 음식을 다채로운 감각으로 느끼는 일은 일상 속 수행의 한 방법이 된다.

 

차가운 생선조림, 마를 갈아 만든 묵, 살짝 익힌 소고기 한 점은 일차적으로 눈을 즐겁게 하고, 혀를 북돋는다. 허나 필요 이상의 자극을 주지 않으며 지나친 혈기를 억제한다. 재료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리곤 만든 이의 수고를 돌아보게 된다.

 

동시에 내가 차가운 요리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미끈하거나 부드러운 식감에 재미를 느낀다는 사소한 정보를 채집할 수 있었다. 외부의 세계를 긍정하고 내부에선 나를 알아간다는 건 지속력이 좋은 수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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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닌지 사찰

 

 

많은 현자가 진리와 지혜를 깨닫기 위해 평생을 매달린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우주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완벽히 이해한 자가 없다. 그것은 모두가 진리를 찾기 위해 주야로 문자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선 사상에서는 실천을 통해서만 그것이 자기 안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 낱의 중생인 나는 무엇이 지혜로운 것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종이에 잠들어 있는 문자에서 벗어나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나를 느낄 수 있을 때 평화로운 마음이 찾아온다는 것은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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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레산스이 정원

 

 

나뭇잎과 이끼의 생생한 초록빛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시간, 시끄러운 마음속 번뇌에까지 그 빛이 번질 때 평정심이 찾아온다. 나는 자연의 한 조각이며, 반대로 내가 자연의 전체와 다름이 없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선과 도형의 기하학적 배치가 돋보이는 일본식 돌 정원, 가레산스이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물이 없이도 산수를 느낄 수 있고, 시간의 흐름이 아스라이 더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바람이 멈추어도 계속해서 파동을 옮기는 물결처럼 영원히 반복된다.

 

내일을 위한 오늘이 아닌, 오늘의 지금을 살아가는 나야말로 모든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과거를 자처하는 나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한 미련의 덩어리일 뿐. 이 느낌을 잊지 않은 채로 현실에 돌아간다면 가볍게 유영하는 현재를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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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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