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리무이’가 예술 작품이 되기까지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9.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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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도 없고 춥지도, 덥지도 않으며 블루베리 파이나 동물도 없는 곳. 그림책 'XOX와 OXO'는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 O’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휑한 행성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글리무이밭뿐이다. 이 반대편의 집에서 XOX와 OXO는 매일 아무 맛도 없는 글리무이로 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겨우리만치 잔잔한 이들의 일상에는 당연히 영감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전무하다. 매일 똑같은 식사와 하나의 프로그램만을 볼 수 있는 텔레비전, 벽지와 책 표지 등 집안 곳곳에 그려진 글리무이는 XOX와 OXO가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벽에 걸린 텅 빈 액자 프레임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표현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내용의 뉴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글리무이 등 온통 무미건조한 것들로 둘러싸인 행성 O는 이들이 직접 상상력을 발휘하며 순식간에 달라진다.


 

“그러나 매일 오후 5시 31분에서 53분 사이, 잠깐 동안 멀리 떨어진 다른 행성의 방송을 볼 수 있다. 방송 상태는 좋지 않다. 화면은 흔들리고, 깨지고, 겹치고, 소리도 안 들린다. 하지만 XOX와 OXO는 방송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이들은 특정 시간에만 볼 수 있는 다른 행성의 방송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고, 이는 XOX와 OXO가 잠시나마 따분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신기하고도 낯선 세상에 경이로움을 느낀 이들은 글리무이 기계를 만들어 이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먼저 이 두 인물의 ‘예술과 창작의 과정’은 기록에서부터 시작한다. OXO는 글을, XOX는 그림을 통해 방송 속의 새로운 세상을 기록했다. 이는 자연히 기록 속 내용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최초로 선택한 방법은 글리무이 기계를 제작해 공장처럼 원하는 물건을 찍어내는 것이었다. 기계에 그림을 넣고 자판 몇 개를 두드리기만 하면 컨베이어 벨트가 켜지며 원하는 물건이 나왔다. 물론 기계를 통해 만든 물건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것은 실망스럽기도 했고, 전혀 다른 형태의 물건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창조를 향한 여정에서 이들의 집념은 흔들리지 않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원하는 형태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고 만들기 쉬운 것들부터 시작했지만, XOX와 OXO는 점차 크고 복잡한 형태를 만들고자 했다. 이후 이들은 단순히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는 것을 넘어 직접 손으로 글리무이 반죽을 주무르며 형태를 완성해나갔다. 이는 이들에 잠재돼 있던 예술성이 더욱 효과적으로 발현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텔레비전 속 물건을 모방했던 과거와 달리, 텔레비전이 고장 났음에도 여태 쌓은 독특한 경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이다. 기계라는 한정된 도구에서 벗어난 이들은 예술의 세계 속에 완전히 몰두한다.


여태 해본 적 없는 일에 몰입하며 XOX와 OXO는 이따금 걱정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로 시간을 다 보내 버린 것 같다고 자책하는 OXO에게 XOX는 그 순간이 행복했다면, 쓸모없는 일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XOX와 OXO'에는 인간이 창조하는 이유에 관한 간단하지만, 깊은 고찰이 담겨있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창의력의 원천은 재미를 가지고 노력하는 마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책 역시 상상력으로 지루함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해나가는 일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조명한다.


어느덧 XOX와 OXO의 집 안과 정원은 이들의 작품으로 가득 찬다. 황량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행성은 이들의 상상력을 거쳐 다채로운 빛을 띠게 되었다. 책은 독자들을 행성 O로 초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기쁨으로의 초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창의력이 선사하는 행복을 잊은 이들에게, 'XOX와 OXO'는 예술적 상상력이 지니는 힘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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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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