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강력한 맨몸의 움직임 - Polish Dance Theatre, 서울세계무용축제

Polish Dance Theatre의 공연 '45'
글 입력 2024.09.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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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맨몸의 움직임


 

춤으로써 나를 처음으로 표현했던 시간을 기억한다. 그다지 넓지는 않았던 무대, 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관중석, 그리고 조그맣고 잘게 떨리던 나의 발걸음과 관중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게 내리쬐던 조명.

 

11살이 되는 해 학교에서 댄스부가 창설되었다. 무대에 올라갈 때만큼은 온 사람들이 나에게 온 관심을 쏟는 게 발끝부터 저릴 만큼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주저 없이 춤을 추고 전국구로 모집하는 대회를 2년 동안 주야장천 나갔다. 처음으로 수상하여 은빛 트로피를 손에 쥐던 때를 기억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여 사람들이 감응한다. ‘춤’이 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작용했던 첫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나에게 춤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오로지 맨몸의 움직임만으로 고유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

 

그러한 의미의 춤으로서 평생 자신을 표현하며 세상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제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가 9월 1일 개막했다. Polish Dance Theatre의 공연, ‘45’를 감상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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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연속성과 유동성, 중첩된 시간


 

Polish Dance Theatre의 ‘45’는 2019년 Polish Dance Theatre의 45주년을 기념하여 디렉터 ‘Jacek Przybyłowicz’ 가 창작하였다. 오후 3시 공연 시작 10분 전, 갑작스레 한 댄서가 아주 느리고 정확한 걸음으로 무대 정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가는 소리가 공연 시작 전부터 크게 들린다. 어떠한 규칙을 중심으로 무용수들이 천천히 공연 시작 시간이 될 때까지 무대의 중앙선으로 일렬을 지켜 모여든다. 담담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는 무용수들. 꼭 어떠한 중요한 대화를 하기 전 목을 가다듬는 누군가의 표정을 훑어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세 시 정각이 되고 대극장이 서서히 암전된다. 한 줄로 나란한 무용수들이 음파의 파동처럼 부드럽게 움직임을 시작했다.

 

천천히 무대 앞으로 나아가면서 무용수들은 한 명씩 몸짓하며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다. 이런 연출을 기획한 의도는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이 공연이 ’45년‘이란 Polish Dance Theatre의 시간을 담아낸 사실을 떠올렸다. 무용수 한 명 한 명이 각각의 고유한 개인이자, Polish Dance Theatre가 걸어온 독립적이면서도 연속적인 서로 다른 시간대이다. 각 시간들은 서로 상호작용하고 소통하며 Polish Dance Theatre의 현재를 쌓아 올린다.

 

 

 

시간이 시간을 보듬고 구한다


 

시간이 흐르며 각 무용수는 더욱 강렬한 움직임을 보인다. 시간의 유동성을 표현하듯 여러 방향으로 몸을 굽히고, 회전하고, 발을 저으며 시간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다. 그러던 중 음악의 곡조가 바뀌고, 괴로워하는 듯한 표정의 무용수가 무대 중앙에서 몸부림과 같은 춤을 이어 나간다.

 

무대 중앙의 무용수를 다른 무용수들이 끌어 일으키고, 보듬고, 안는다.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 느려지는 춤사위에서, 다른 시간대들의 도움으로 굴하지 않고 다시 박차고 일어난다. 시간이 시간을 구하고 보듬는다. 괴로워하는 어느 시간대의 나를 다른 시간대의 내가 구한다. 결국 다시 나아간다. 내가 나를 구한다.

 

점차 차분해지는 노래에 맞춰 모든 무용수가 무대에 하나둘 눕기 시작한다. 어떤 무용수들은 서로 겹쳐 눕는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무용수들은 서로의 손을 다잡으며 다시 서서히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Polish Dance Theatre가 쌓아온 45년의 세월을 여러 파편으로 조각내어 초, 분, 시간의 단위로 나열하며 공연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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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현대의 만남


 

Polish Dance Theatre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무용단으로서, 차분하고 엄격한 발레와 현대무용의 아름다운 상상력을 결합한 예술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 ’45‘ 역시 신체적인 강렬함과 신고전주의의 우아함, 그리고 예술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으로써 무용에 대한 예술적 홍보와 발레 문화 확산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Polish Dance Theatre의 목표를 아름답고 과감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가장 원초적인 맨몸의 움직임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시간의 진정한 의미와 경이로움, Polish Dance Theatre의 획기적인 공연 ’4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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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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