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완벽이란 존재하는가? - 영화 사랑의 탐구

육체와 정신의 사이에서
글 입력 2024.09.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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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위대해 어려운 무언가. 그러나 가장 보잘것없고 단순하며 지겨운 어떤 것. 세계인의 영원한 욕망이자 고뇌. 우리가 '사랑'에 매달리는 이유가 그 본질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면, 사랑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영화를 보러 가면서 얼마나 고뇌했는지 모른다. 혼자 관람한다면 그 어떤 장르든 기꺼이 재미있게 볼 준비가 되어있겠지만, 나는 무슨 생각인지 동행인을 만들고 말았다. 우리는 그 어떤 예고도 찾아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포스터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패셔너블한 서양인들이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철학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시시하고 씁쓸하게 끝나버리는 영화. 내가 아는 프랑스 영화란 딱 그런 이미지의 누벨바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그게 얼마나 찌든 편견이었는지!

 

<사랑의 탐구>는 재미있는 영화다. 어처구니가 없어 약간의 실소가 터지는 류의 재미가 아니다. 으레 괜찮은 로맨스 코미디 영화들이 관객의 입꼬리를 올리게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의 재미다. 도저히 상업영화가 아닐 거라고 예상하며 들어갔던 나는 생각보다 가볍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예술적이거나 조금은 도발적인 연출들에 제법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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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의 탐구>는 캐나다 작품이다. 그러나 극 중 인물들이 모두 불어를 사용하고 프랑스 문화권과 훨씬 가깝기 때문에, 외려 프랑스인들의 연애관을 엿보기 좋은 작품이다.

 

프랑스 하면 자유연애가 그토록 유명하지 않던가. 68혁명을 겪지 않은 나라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겐 그들의 모습이 특히나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거의 다른 세상으로 느껴질 정도다. 만남과 헤어짐은 가볍고, 진지한 관계에서조차 약간의 외도는 그것이 '사랑'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대단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단지 권태기를 겪는 연인들의 모습이 공감대를 형성해서일 뿐 아니라, 사랑의 담론을 섬세히 쌓아 올린 프랑스의 모습을 적나라하고 또 자연스럽게 보여주어서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탐구>를 보면서 사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 소피아는 방황하고 있다. 남편 자비에는 자신과 비슷한 중상류층 출신의 사람이다. 똑같이 학구적인 사람으로 교수 일을 하는 데다, 대화가 잘 통하고 다정하지만 단 한 가지. 오로지 지적, 정서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을 뿐 육체적인 매력이 없다. 소피아에게 육체의 쾌락은 정서적인 부분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실뱅이라는 남자는 어떤가. 별장을 수리하기 위해 불렀다가 만난 그 남자는 옷 대신 마초적인 남성성을 두르고 있는 사람이다. 출중한 외모, 그만큼이나 출중한 성적 매력, 그리고 소피아를 여신이라고 칭하는 등 뜨거운 애정 공세를 펼쳐 결국 소피아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정의를 자꾸만 수정하게 만든다. 자비에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기꺼이 포기하게끔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소피아는 그와 사랑을 속삭일 수는 있어도, '대화'를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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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완벽을 꿈꾼다. 사랑해야 한다면 완전한 누군가에게 나를 맡기고 싶다. 남녀노소 모든 인류가 수천 년, 수만 년을 원했던 궁극이자 인생의 장작이지 않은가. 사랑을 토론할 때 이상형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빠짐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사랑에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더욱 거대하고 강력한 환상의 이미지가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실 우리는 사랑이 하고 싶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피그말리온이 되고 싶은 것이다. 정정한다. 사랑의 탐구에 나오는 철학자의 여러 담론에 더불어 이런 말을 추가해야 한다. 사랑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 신화가 바로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라고. 사랑이란 내 인생이 오로지 내가 나를 위해 설계한 것이며, 또 그것이 완벽하다고 믿을 수 있게 도와줄 실현 가능한 조각상을 찾는 과정이라고.


소피아의 갈등은 자유연애의 세상이 아닌 이곳에서도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모든 것이 나와 꼭 맞는 애인을 누구나 바라지 않던가? 정신과 육체,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단정 지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외로 국내에서 드라마로 리메이크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머 포인트도, 갈등 포인트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1020의 젊은 층보단 3040의 눈에 더 흥미로운 작품인 점도 드라마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다만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겠다. 아무래도 외도에 관한 가벼운 시선은 유교 국가에겐 아직은 어려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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