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력함을 이겨내려면 직접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절대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글 입력 2024.09.17 12:3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너네 학교에 범죄자 다니는지 지금 당장 확인해라.'

 

내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위와 같은 제목을 가진 한 인터넷 사이트 게시글을 읽게 되었을 때다. '학교에 범죄자가 다니는지 확인할 방법이라고?' 단순한 호기심에 들어간 게시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게시글에는 딥페이크를 이용하여 악행을 저지른 범죄자들이 수만,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딥페이크 성 착취물 제작 범죄자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많았으며, 그들은 중·고등학교 가릴 것 없이 곳곳에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 딥페이크 피해 학교 명단에는 내가 나온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내가 지금 재학 중인 대학교까지 있었다. 나는 해당 게시글을 접한 밤, 나는 잠을 설쳤고, 다음 날 아침 언론에는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기사가 가득했다.

 

딥페이크 기사가 수면 위로 떠오른 뒤부터 나는 관련 기사나 영상들을 웬만하면 꾸준히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다. 기사나 영상에 달린 댓글도 전부 읽어보는데, 그때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연대감과 무력감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밀려온다. 가끔 나의 숨을 막혀오는 듯한 댓글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댓글을 발견한 아침은 그날 하루의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지인들 사이에서 딥페이크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은 대화 주제를 바꾸려고 들거나 입을 다물었다. 몇몇 사람들은 잠깐 공감을 해주다가 이내 주변인들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다 결국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거운 이야기 나누지 말자는 한 지인의 말을 끝으로 딥페이크 관련 이야기는 묻혀버리기 일쑤이다. 단지 분위기가 가라앉는다는 이유만으로 딥페이크 이야기들은 여러 번 외면 당해왔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좌담이 생겨나야 한다고 믿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토론의 공간을 온라인으로 확산시켰다. 

 

 

KakaoTalk_20240917_001605915.jpg

  

 

이제는 더 이상 집 안에서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휴대폰 안에 있는 딥페이크 관련 글을 읽으며 ‘나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서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무력하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잠깐 분노하고 다음 날 되면 하얗게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두려운 마음이 컸다. 특히 여전히 젠더 갈등이 팽배한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에 겁이 났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는 척’ 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에 딥페이크 관련 내용 스토리를 올리고,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는 서로 이웃 된 사람들만 볼 수 있도록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절반이 가려진 아이디로 나는 익명의 힘을 빌려 성범죄자를 처벌하라는 댓글을 달았다.

 

나는 나름대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나의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건 내가 나 스스로를 ‘비겁한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전히 얼굴을 포함한 신상정보를 드러낸 채 이 사건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이다. 이런 현실에 환멸감을 느끼다가 이 환멸감은 이내 나 스스로에 대한 비겁함으로 바뀌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SNS에서 딥페이크 관련 목소리를 높이는 건 분명한 확산력이 있으나 쉽게 잊힌다. 벌써 몇몇 사람들은 딥페이크와 관련된 내용을 잊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딥페이크를 과잉규제가 있다’, ‘유난’이라고 말하며 조롱한다. 그들에게 문제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나서야만 한다. 며칠 전, 나는 9월 21일, 혜화역에서 열리는 ‘딥페이크 성 착취 엄벌 촉구 시위’ 참여 신청을 했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밖으로 나가 외치고 움직였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KakaoTalk_20240917_001322274_02.jpg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속상해하지 마라. 네가 바뀌었다.’

 

더 이상 이 사건을 무기력, 두려움이라는 감정에만 매몰시킬 수는 없다. 앞으로 이 대한민국 시대를 살아갈 여성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들을 위해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분명 어딘가에서는 꼭 필요한 목소리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지치지 말고, 꾸준히 연대하자.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원본 태그.jpg


 

[임유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