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해는 자유로움을 - 해방자들

글 입력 2024.09.1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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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은 1980년 대전이다.


일제강점기-광복-한국전쟁을 지나 독재체제를 뒤이은 쿠데타와 계엄령으로 살벌해진 한반도가 책의 배경이다.


아내를 잃은 ‘요한’의 딸 ‘인숙’은 대학교 4학년으로 당시 민주주의를 추동하고 반미 정서에 가담한 급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인숙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아버지 요한이 경찰에 끌려가고 허무하게 총살된다.


생존과 직결된 불신의 시대에 인숙은 생기를 잃었다. 남자친구인 성호와 결혼을 마친 후 몇 년 지나 아들 ‘헨리’ 그리고 시어머니 ‘후란과 함께 그렇게 흘러가듯 캘리포니아에 정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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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개인의 일상이 곧 한국 근현대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입체적인 살아가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인숙은 1980년에 학생운동에 가담했고, 그 사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전의를 상실한 채 아들과 시어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왔다.


그곳에서 잠시 인연을 맺은 ‘로버트’의 어머니 ‘고일’은 일제강점기 일본 전쟁 작전에서 부여받은 숫자 5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 치열하게 살아남았고 그러기 위해 기회주의자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리고 로버트는 캘리포니아에서 한반도의 진정한 자유를 주장하며 북한과 남한의 통일에 사람들이 동조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행동한다. 〈해방신문〉을 발간하고 지인을 불러놓고 연설을 하는 식의.


한편, 로버트의 연설을 듣던 와중에 책에서도 지적하듯 허무주의자인 인숙의 남편인 성호는  그의 생각에 이견을 내세운다. 통일에 동반하는 천문학적인 비용 문제, 통일이 되더라도 희생될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 더 이상 ‘뭘 더 잃고 싶지 않’다는 그의 반론은 몇몇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날선 두 인물의 대화 안에서 시대상과 더불어 현세대의 입장까지 가늠할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 남한에 도착한 로버트의 긴 연설 장면이 전개되는데 이는 곧 작가의 메시지일듯싶다. 미국에서부터 한국에 오기까지 로버트는 지나치게 맹목적으로 주변인들에게 통일을 설파한다. 어떠한 계시를 받은 사람, 통일의 대변인으로서 자기희생을 마다하고 한반도에 사는 이들이 자유로운 한국인이 되길 바란다.


그런 것이다. 미해결인 채로 남아 이도 저도 아닌 분단은 책에서 선형적으로 서술한 1980년부터 2014년 사이에 그랬듯, 언제든지 같은 상황을 반복할 수 있다는 불안함을 상기한다.


그러므로 로버트는 통일된 한국을 무모하게 밀어붙였다.


["(...) 저는 바보일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 손으로 조심스레 쌓아 올린 안전하다는 감각에 구멍을 내는 것일까요? 왜 우리가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것들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까요? 우리는 고향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그런 고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그런 가족을 만들 수 있어요."] (273쪽)

 

화해의 메시지는 시대적 맥락과 결부된 등장인물 간의 관계로 이어진다.


고난을 함께 해치며 비로소 처지를 이해한 시어머니 후란과 며느리 인숙, 후란이 교회에서 나누는 재외 동포 간의 정, 긴 세월을 지나 이뤄진 인숙과 성호의 화해는 모두 충분한 대화와 육체적 교류를 통해 해결된다.


책에도 등장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이민 2세로 태어난 작가 고은지는 한국으로 이주하신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고독함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편지로 인해 용서를 하고 자신과 가족이 왜 그러한 처지에 놓이게 됐는지 이해했다.


그간의 고민과 경험이 쌓여 드라마 〈파친코〉 작가진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번 신작 해방자들을 출간하게 되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거대 서사와 그 안의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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