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땀한땀 한글을 연결하여 완성한 한반도 - 해방자들

글 입력 2024.09.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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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디아스포라의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의 세계가 온전히 저기도, 여기도 없는 새로운 것이라고 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태그로 내세운 <해방자들>은 낯설다. 문체도 특정 주제를 다루는 방식, 묘사되는 한국인의 모습 모두가 낯설다. 작가가 한국인 부모를 둔 외국인, 외국에 자신을 두고 한국에서 벌이해야 했던 부모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 그녀의 생활과 현실은 미국에 있지만, 멀리서 일하는 부모님은 한국에 있다. 이러한 삶의 배경 덕분일까, 작가는 한국과 미국의 중간지점에 있는 통번역과 글짓기에 몰두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자기 삶의 치유가 되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이번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 해석을 더 하자면 한국의 아픈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이질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삶을 바느질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걸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점을 짚어보라고 한다면, 소설의 첫 장과, 인숙의 아버지 요한이 교도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라고 말할 것 같다. 작품의 첫 부분은 작가가 언어, 혹은 언어로 표상된 분열된 두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영리했던 요한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이 첫 장면은, 돌, 식물, 동물, 인간, 신 사이에서 삶의 장면을 이어가는 소년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성인이 됨으로써 다른 단어들도 발견하고 적어 내려가지만, 사랑 앞에서 그 단어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와 삶을 변형시킨다. 여러 언어의 자리, 단어의 자리는 그가 경험한 삶에 의해 서로를 바꾼다.

 

요한의 언어는 억울하게 끌려온 교도관과의 대화에서 마무리 지어진다. 다양한 단어를 들이미는 교도관 앞에서, 요한은 한결같이 ‘삶’이라는 단어로 마무리한다. 바빌론처럼 해체된 언어, 분열된 내전으로 갈라진 남한에서 그는 한 단어로 답하고, 결국 한 단어로 서로 이야기한다. 교도관은 그에게 약간의 자비를 베풀지만, 그 자비는 허무한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요한의 방식은 이후 그를 닮았다던 헨리에 의해 이어진다. 할아버지만큼이나 지혜로웠던 헨리는 언어로 세상을 이해했던 할아버지와 달리 비언어에 가까운 직관으로 소통한다. 요한이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것으로 첫 장을 묘사한다면, 헨리는 사람들의 행동, 강아지와의 유대를 통해 이해한다. 할아버지가 삶이라는 단어를 통해 온전한 하나로 통합했던 것처럼, 헨리 역시 완전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옴으로써 삶을 통합한다.

  

이 책은 이처럼 분열된 것을 하나로 엮어내려는 치유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찬 작품이다. 하지만 다문화를 하나로 엮어내려고 했던 것처럼 몇 가지 부분은 다소 부자연스럽게 사회적 메시지를 엮어낸 것처럼 느껴진 부분이 있었다. 나에게는 ’로버트‘가 그랬다. 한국에서 태어나 생활한 인숙과의 불륜관계는 설득력이 부족했고, 그녀의 등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의도가 이해가 가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로버트의 마지막은 명예로운 투사의 그것이었지만, 이 캐릭터가 지향하는 바와 행동이 내가 앞서 기술한 시적인 장면들의 은근함과 비유와 대조적이어서 두드러졌다. 로버트에게는 끝, 제니와 헨리에게는 계속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의도된 대조일 수 있지만, 복잡한 남북문제를 극적인 캐릭터의 장면으로 묘사하기에는 좀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의지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의지를 가지고 한 땀 한 땀 연결하여 완성한 태피스트리처럼, 아마 그 삶에서 비롯된 찬란한 의지는 작품을 통해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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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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