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창 바깥의 캔버스 - 화가가 사랑한 밤

<화가가 사랑한 밤>, 정우철
글 입력 2024.09.1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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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밤 평면 표지.jpg

 

 

당신의 밤엔 하늘이 걷혀있는지 모르겠다. 바쁜 낮을 보내고 돌아오면 당신의 방은 닫힌 밀실일지, 혹은 세상을 향하는 창일지. 오래도록 커튼으로 세상을 닫아두다가, 간만에 커튼을 걷어보면 눈이 먼 밤이 낮보다 세상을 바라보기 적절함을 깨닫는다. 아무도 없는 고요에, 나를 괴롭히는 것도 사라지고 나서야 “아, 세상은 이렇게나 평화로운 것이었지” 깨닫는 것이다. 인간을 설명하는 것은 밤이기도 하다.

 

<화가가 사랑한 밤>은 인간 절반의 세계, 밤의 풍경을 소개한다. 어느 것이든 화가의 해석대로 그려질 수 있는 예술의 특성을 반영한 듯, 마냥 아름답고 고요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그림 속 밤의 특별한 점이다. 이 책은 낮 동안 잊고 살던 삶의 불빛, 저 멀리 떨어진 별빛에 대한 그리움, 또한 삶의 불안과 광기를 거침없이 그려낸 모습까지 한아름 껴안고 있다.

 

*   *   *

 

책 속에 담긴 101점의 그림 가운데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매혹하는 그림은 적지 않다. 타오르는 별똥별이 내뿜는 빛을 의인화한 그림, 바쁜 하루를 보내고 농민들에게 유일한 휴식이 되는 밤의 풍경. 그러나 180쪽을 숨 가쁘게 읽고 난 뒤, 책을 요약하는 한마디가 예쁜 이미지 전달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위로받았던 이야기를 전하고자,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제목의 그림 두 점을 소개하고 싶다. 뭉크는 같은 제목의 그림을 무려 6점이나 그렸는데, 책에서는 1893년과 1922년의 그림을 담고 있다. 뭉크는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로, 어릴 적부터 겪은 가족의 상실로 인해 삶과 죽음, 고독, 불안 등의 주제를 주로 택하곤 했다.

 

1893년 <별이 빛나는 밤>은 어두컴컴한 밤이다. 등 돌린 언덕과 땅은 파란색 우울로 뒤덮여있고, 위아래로 대칭을 이룬 모양의 하늘과 바다는 가만가만 빛나는 불빛으로 겨우 빛난다. 밤이 불러오는 불안, 우울감과 신비로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풍경이다.

 

그러나 1922년의 <별이 빛나는 밤>은 그보다 묵직한 감동이 있다. 어둡기만 하던 하늘에 밝은 빛이 물들었고, 저 멀리의 건물에도, 화가의 바로 위로도 희망의 밝은 빛이 드리워온다. 화사한 빛이 이곳저곳서 은은하게 빛나는 밤의 풍경은 우리에게도 희망의 불빛을 비춘다. ‘외롭고 미움받는’ 삶을 살아낸 사람이 마지막에 깨닫는 건 인생에 대한 분노, 좌절, 무력이 아니라 희망이고 빛이고 긍정이라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인생을 마침내 살게 만드는 것은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30년을 거쳐 마침내 완성된 밤의 하늘은 희망과 사랑의 하늘이다.

 

*   *   *

 

희망의 밤하늘을 그린 사람은 뭉크뿐이 아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혼자만의 예술을 그려가던 빈센트 반 고흐와 소박하지만 성실한 농민의 밤을 주목하던 장 프랑수아 밀레도 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밤의 풍경을 그렸을까? 창을 드리운 커튼을 걷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나의 마음과도 비슷한 것을 고흐에게서 보았다. 발작과 알코올중독으로 직접 귀를 자를 정도로 마음이 혼란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다 못해 스스로를 다잡지 못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고흐에게도 밤의 하늘은 있었다. 하늘을 수놓는 달과 별,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 그런 것들이 모여 좁은 창 바깥으로 빙빙 돌아가는 빛깔.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법도 잊은 고흐에게 소중하고 귀했던 것은 결국 밤의 하늘이었던 것이다. 그는 바깥사람들과 심지어 자신에게마저 소외당했지만, 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우리에게도 고흐의 밤과 같은 날이 있다. 혼자가 된 것 같은 날에도 하늘에는 여전히 달은 있고 빛은 있다. 그것만이 삶의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가만가만 빛나는 풍경이 그렇게도 위로가 된다. 혼자였던 화가들에게 밤이 위로가 되었듯이, 우리에게도 그러한 밤이 있듯이, 화가들이 사랑한 밤이 매일의 밤을 수놓는다.


 

 

서지원 컬쳐리스트.jpg

 

 

[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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