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 수 없는 마음을 위로하는 건 [문화 전반]

늦가을에 처방 받은 시집 두 권
글 입력 2024.09.18 12: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생각에 잡아먹힐 것 같아도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을 때,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내가 꼭 찾는 곳이 있다. 나의 아지트는 바로 광화문에 위치한 커다란 지하서점이다.

 

 

 

생각이 많을 땐 책방으로


 

대표사진.jpg

 

 

작은 방 안에 앉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면, 그 결론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가장 쓸모 없고, 내가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원망만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럴수록 바깥으로 나와서 나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책이 가득한 서점은 "나와 거리두기"를 실천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시집, 자기계발서, 교양 서적, 학술서, 각종 자격증 교재, 잡지, 만화책... 수많은 종류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책방은, 온통 나 자신에게 신경이 쏠린 채로 서글퍼하던 나에게 외친다. 어서 빨리 우울의 굴레 밖으로 나오라고.

 

그뿐이 아니다. 구경하기에 더 재미있는 건 그 책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공부를 하기 위해 참고서 코너를 두리번거리고, 누군가는 베스트셀러 책을 돌아가며 훑어본다. 별다른 목적 없이 놀러 왔는지, 일행과 조곤조곤 수다를 떨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저마다의 이유로 한 곳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노력해도 멈출 수 없던 고민에 갑자기 마침표가 찍힌다. 나는 이걸 "살아있는 사람들이 내뿜는 에너지"의 효과라고 믿는다.

 

다시 조금 살아난 나는 더 적극적으로 책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의 책을 뒤적거리고, 마음에 드는 제목이나 표지의 소설책을 집어든다. 끌리는 책이 있으면 - 그리고 지금까지는 언제나 그런 책이 있었다 - 그대로 결제를 하고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나에게 내리는 나름의 처방약이라고나 할까.

 

나흘 전에도 어김 없이 책방에 들렀다. 마음이 복잡한 내게 이곳이 꼭 필요하다며, 그날 만나기로 했던 일행을 끌고 갔다. 더위가 한풀 꺾였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찐득한 늦여름, 저녁 늦게 처방 받은 책은 두 권의 시집이었다.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고백은 어째서.jpg 샤워제로가 소다수.jpg

 

 

사실 이번의 서점 방문은 목적이 있긴 했다. 여름에 읽기 참 좋은 책이라고 추천하는 글을 보았던 시집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저자 오병량)가 그것이다.

 

편지를 쓰는 내내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모든 편지는 고백과 다름 없다고 여기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끌릴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다.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에 좋은 시들이 담겨 있다.

 

주변에 놓인 다른 시집들도 한두장씩 펄럭이다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던 책이 이날 구매한 또다른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저자 고선경)이다.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은, 그러나 상황을 위트 있게 비트는 표현들로 채워진 시집이다. 깊은 내면을 그리고 있지만 적당히 가벼운 말투를 섞어 막힘 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마음을 위로하는 건


 

output_603924885.jpg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107쪽, 「사랑의 달인」 中

 

 

고백하자면 정말 '읽기' 위해 시집을 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집이란 적당히 예쁜 문구가 적혀 있거나,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단어가 나열되어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시에 푹 빠져볼 수 있었다. 여전히 모든 문장의 의미를 낱낱히 이해했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어떤 울림을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혼란스러운 마음에 힘들었던 요즘이다. 논리적이고 정형적이지 않은 알쏭달쏭한 표현들이 나조차 알 수 없는 내 마음과 통하는 지점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도 몇 번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집이 놓인 진열대를 서성거릴 것 같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장유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