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그림이 비싼 이유 - 그림값 미술사

그림에 가격을 덧그리는 것들
글 입력 2024.09.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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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음 중 미술작품이 비싼 이유를 모두 고르시오

 

1. 기존 소장자가 유명 인사라서

2. 기존 소장처가 특이한 곳이라서

3. 해당 작품의 재료비가 비싸서

4. 미술사적 가치가 높아서

5. 경매에 작전세력이 붙어서

 

KBS에서는 여전히 일요일 오전에 고미술 감정프로그램인 'TV쇼 진품명품'을 방송하고 있다. 희소성으로 높은 감정액을 받기도 하지만 역사적 가치는 있어도 낮은 감정액이 나오기도 한다. 염가에 산 골동품이 감정을 통해 진짜 정체를 밝히기도 한다. 저 사람이 들고나온 물건은 비싼 걸까, 아닐까. 판정을 받을 때까지 금전적 가치를 알 수 없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미술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을 대중에게 꾸준히 쉽고 많이 노출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그림을 사는 이유로는 총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안전자산으로서의 투자, 신분(계급) 과시, 성취감, 고상한 품위,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욕. 그리고 그림값이 비싼 이유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는 사이사이 질문을 던진다. 오래된 작품과 비교적 최근 작품, 크기가 큰 작품과 작은 작품 중 어느 게 더 가치가 있을까. 답이 없거나 답이 필요 없는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제기되었을 때 "어?"하고 반응하게 된다. 작품의 가치란 도대체 어디의 무엇일까. 그러다 보면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타당한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마티스의 '뻐꾸기들, 푸른색과 분홍색 양탄자'가 예상가를 뛰어넘는 520억원에 판매된 이유는 이브 생로랑과 피에르 베르제 컬렉션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인물의 소장품이기 때문에 작품의 가치가 올랐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명 작가 누구의 어떤 작품이며 경매에 나오는 일이 얼마 없습니다. 이전 소장자는 역사적인 인물이고 전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몇백만 혹은 몇천만 유로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투자를 위해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야? 라는 불신의 시선을 장착하게 된다.


책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읽으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마주한 잭슨 폴록의 이야기.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록이 미국 미술계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스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국가권력이 개입했단 건 모르고 있었다. 그의 자유로운 작업 스타일을 미국의 리버럴리즘과 결합해서 정치적으로 선전하는 수단으로 썼다니. 애국심을 고취시켜서 컬렉터를 움직이게 하는 동안 잭슨 폴록은 본인의 작품에 부여된 높은 가치로 인해 강박과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만들어낸 성공 사례는 정치권과 컬렉터의 지갑만 만족시켜 준듯하다. 작품에 새겨진 작가의 의지가 과연 온전히 본인만의 것이었을까 뒤늦은 의문이 묻는다. 가격이 주는 가치에 장난질을 쳤다면 그건 작품을 위한 게 맞을까.


권력에 좌우되는 화가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작가의 흔적에 시민들의 손길이 닿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녹는 기분이 들었던 몇 안 되는 부분이었다. 고흐가 고갱에게 쓴 편지는 뒤늦게 우연한 계기로 발견되고 이를 통해 고갱과 고흐의 관계가 재조명된다. 미술 작품은 아니지만 화가의 삶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편지는 고흐가 머물렀던 아를에 있는 레아튀 미술관의 손으로 들어갔다. 고흐의 대표적인 작품이 태어났으나 고흐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아를의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편지를 아를로 가져왔다는 이야기. 어떤 이유에서인지 편지는 다시 발송지로 돌아왔고 아를에는 고흐의 조각이 남게 되었다. 돌고 돌았지만 어쩐지 이게 제 위치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가 띠지에 가려진 부재를 흘긋 본다. '부자들은 어떤 그림을 살까'. 부자가 아니면 우리가 아는 유명 작품을 손에 넣을 수 없으니 그런가 싶지만 미술은 어쩌다 사치재가 되었나 싶다. 생각해 보면 '태초에 귀족의 후원이 있었다'로 귀결되어 미술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싶다가도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종교화를 생각하면 명예도 있긴 한데.. 싶고. 책의 주제를 알고 읽었지만 예술품 옆에 계속 가격표를 붙여두니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기분은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해소되었다. 화상과 갤러리의 적극적인 지원과 후원은 기획 전시가 되고 참여한 작가들은 스타가 된다.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화상과 갤러리는 작품을 높은 값에 판매하는데 성공한다. 투자는 이익으로 돌아갔다. 관련 인물 모두 손해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귀한 작품이 어느 창고 안 뽀얀 먼지 아래 감춰져 있을지도 모르고, 몸값을 위해 때를 기다리는 작품이 어딘가에 곱게 모셔져 있을지도 모른다. 유명한 거라서 비싸고 유명해질 거라서 비싸다. 비싸다는 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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