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차가운 안경테에 담겨진 인간다움 - 시뮬라시옹

연극 [시뮬라시옹]을 보고 당신에게 전하고픈 마음
글 입력 2024.09.1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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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 포스터 최종.jpg

 

 

 

시뮬라시옹의 첫번째 힘, 시놉시스


 

당신은 연극이나 영화를 고를때 무엇을 먼저 보는가? 출연하는 배우일수도, 극의 창작자 즉, 감독이나 작가를 보고 관람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별 생각 없이 가을날의 한 낮을 즐기다 청명하고 따뜻한 햇살에 이끌려 계획 없이 극장에 찾아 볼 연극을 정한다면 당신은 분명 시놉시스, 그러니까 간략한 줄거리를 보고 콘텐츠를 고를 것이다.


그렇기에 시놉시스는 만나기 직전인 창작자와 관람객의 소중한 소통 창구이다. 창작자가 시놉시스를 통해 관람객을 설득해내는데 성공한다면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은 예술을 매개로 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연극 [시뮬라시옹]을 보기 며칠 전부터 극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과한 칭찬이 아니다. ’사별한 아내를 AI 복원기술로 다시 만난다‘ 라는, 한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본 연극의 시놉시스는 나의 머릿속에서 무궁한 상상으로 발전되었기에 충분한 주제였다.

 

 

 

흥미로운 설정속에 숨겨진 본질


 

결과를 먼저 이야기 하자면,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속에서 이미 결정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바꿀수는 없었던 것 처럼 극중에 등장하는 시뮬라시옹 안경도 이별이라는 대명제를 없앨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떠올리고 싶은 존재를 가상으로나마 실체화 하는 시뮬리시옹이 기술 발전의 폐혜를 보여주는 매개체로 소비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시뮬라시옹은 관객에게 물음을 던질 뿐이다. ‘나는 이미 세상으로 나왔어. 나를 쓸지 안쓸지는 오로지 너의 선택이야.’ 라면서 진중하게 접근한다.


극의 주인공, 선욱은 이러한 시뮬라시옹의 물음에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한다. 한 번 써보자, 얼마나 아내와 비슷하게 재현해내는 지 한번 보자며 시뮬라시옹 안경을 콧대에 건다. 이 지점부터 시뮬라시옹이라는 근미래의 과학 기술은 극의 조연으로 후퇴한다. 그리고 선욱과 세상을 떠난 아내, 상아가 그 자리를 채워 나간다.


시뮬라시옹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AI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창조자와 사용자는 모두 인간이다. 그렇기에 기계에 대체된다, 인간은 쓸모 없어진다는 세간의 걱정 따위는 시뮬라시옹을 통해 상아의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려는 성욱의 노력에 의해 점차적으로 해체된다. 선욱은 모르겠지만 스스로 상아의 과거를 알아가며 피폐해지는 과정에서, 관객의 무의식에는 안도감이 자리잡게 된다.

 

 

 

결과를 바꿀 수 없다면, 진실은 쓸모 없는가.


 

선욱이 몰랐던 상아의 뒷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자주 소비되어 피로감이 들 정도의 균열. 쉽게 말하면 불륜의 형태를 띈다. 그렇지만 단순히 불륜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쫓아가지는 않길 바란다.


선욱은 시뮬라시옹을 통해 가상의 상아를 복원한 것을 계기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상아가 혼자 떠난 여행이 아닌,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떠나던 중 변을 당했다고 추측하게 된다. 이 지점부터 선욱에게는 상아가 가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가상의 대상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증거를 수집한 뒤 안경을 쓰고 가상의 데이터 더미에게 화를 낼 뿐이다.

 

선욱이 화를 표출하는 대상은, 사별한 부인인 상아이지만 관객입장에서 볼 때, 분노가 향하는 방향은 자기 자신이다.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선욱은 정신적으로 자해를 하며 자신이 알게된 진실이 거짓되었기를 바란다.

 

선욱이 상아에게 어떤 감정, 태도를 가지든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죽은 상아가 되돌아오는 것은 대전제를 부정하고 극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성욱의 분노를 통해 관객에게 묻는다. 결과를 바꿀 수 없어도 포기하지 않겠느냐고. 당신은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인지 결과에 수긍할 뿐인 사람인지. 이러한 질문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꾸준히 이어진다.

 

당신은 연극 [시뮬라시옹]의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던질 것인가. 확실한 건, 아무도 당신에게 정답을 강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당신의 생각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니까.

 

 

 

김한솔.jpg

 

 

[김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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