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가가 사랑한 밤 - 정우철 도슨트, 에드바르 뭉크 [도서]

글 입력 2024.09.1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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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밤 평면 표지.jpg


 

미술 전시를 관람할 때 해설을 듣기 위해 시간을 맞추거나, 선호하는 도슨트가 명확한 관객들도 있지만, 나는 해설에 크게 집착하지 않고 어떠한 도슨트든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러한 나를 유일하게 팬으로 만든 도슨트가 있다. 바로 정우철 도슨트다. 한때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도슨트를 꿈꾸게 할 만큼 정우철 도슨트는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정우철 도슨트가 특별한 이유는, 그에게서는 ‘진심 어린 노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도슨트 중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일반적인 노력을 넘어서면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진심은 전해지는 법! 이 사람이라면 믿고 들을 수 있겠다는 신뢰가 저절로 생겼었던 것 같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해외로까지 견학을 다녀온 일화, 그리고 한 화가에 대해 도슨트들 중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고자, 시중에 있는 모든 도서를 찾아 읽었다는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정우철 도슨트도 힘든 무명 시절이 있었지만, 이 시기를 하늘이 감동할만한 노력으로 이겨낸 그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구나’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특별한 두번째 이유를 꼽자면, 정우철 도슨트는 ‘인간다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나는 정우철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이기도 한데, 가끔 올라오는 솔직한 고백과 고뇌 섞인 글에 공감이 갔고, 그러한 고민에서 인간미를 느꼈다. 이 이유로 항상 뒤에서 도슨트님을 응원하게 되었던 것 같다. 형식적인 해설가가 아닌, 정우철만의 인생이 녹아있는, 따뜻한 관점으로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것 같다.

 

이러한 따뜻한 해설은 『화가가 사랑한 밤』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의 문체에서도 다정함과 희망이 그대로 묻어난다. 마치 현장에서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을 직접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평소에 에세이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글귀를 좋아하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정우철님의 감성은 오글거림 없이 오히려 위로가 되어주었다. 문체가 하나의 시처럼 이쁘고 아기자기했다.


 

밤은 우리의 몸을 재우지만 잠들어 있던 감성을 깨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솔한 이야기가 시작되죠. 혹시 붓 터치에도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물감을 두껍게 꾹꾹 눌러 바르며 사무치는 슬픔을, 부드러운 터치로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면 그곳에는 한 인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 Prologue 중

 

 

모두가 감성적으로 변하는 ‘밤’이 책의 주제인 점도 마음에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밤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가 이 점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The night is more alive and more richly colored than the day” - Vincent van Gogh 

밤은 낮보다 더 강한 생명력과 풍부한 색채를 갖고 있다 - 빈센트 반 고흐

 

- Pg.29


 

나는 예술 거장들의 어려운 인생사를 들을 때, 그 어떠한 것보다 큰 위로를 받는다. 이러한 위대한 화가들도 아무것도 아닌 나보다 더 큰 슬픔을 지녔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것을 특별한 방식이 아닌,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예술을 이용한 승화로 풀어냈다는 점이. 그냥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 나와 똑같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화가가 사랑한 밤』을 읽으면서 죽기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나만의 예술 산물(그게 비록 똥일지라도)을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꾸준히 나의 20대, 30대, 40대... 삶의 여정에서 그 당시 느끼던 감정들을 예술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쁘게 작품으로 포장해서 말이다.

 

 

 

에드바르 뭉크


 

책에 등장하는 여러 화가 중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화가는 에드바르 뭉크였다. 나는 책을 마친 후 바로 예술의 전당으로 달려갔다. 마침 운 좋게도 뭉크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실제 내 눈으로 보다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책을 읽으며 생겨났던 궁금증들을 바로 전시장에서 풀 수 있었고, 뭉크를 더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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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어렸을 때는 만화적 그림체를 가진 《절규》를 보며, 작품이 왜 그토록 유명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벼운 그림체 뒤에 가려져 있는, 화가의 공포를 보게 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큰 괴로움과 압박감이 나를 옥죄어 오면, 방 안에서 혼자 ‘아아악!!!’ 소리 지르는 흉내를 내곤 한다. 물론, 층간소음은 주의해야 하니 무음으로 소리친다. 나의 ‘미치겠음’을 정말 말 그대로 scream으로 표출할때가 있다. 『화가가 사랑한 밤』을 읽으며 《절규》가 불현듯이 생각났는데, 실제로 미친 사람의 내면 모습을 시각화하면 딱 《절규》가 아닐까 깨닫게 되어 충격이었다.


 

해 질 무렵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고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피로감을 느껴 울타리에 기대었다. ⋯ 친구들은 걸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뒤처져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자연의 거대하고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

 

- 《절규》에 대한 뭉크의 일기 (1892년)

 

 

《절규》는 뭉크가 공황발작을 경험했을 때의 모습으로 예상된다.

 

자세히 보면, 뒤 배경의 일행들은 태연하게 다리를 건너고 있다. 불안해 보이는 사람은 주인공뿐이다. 현실에서도 대다수가 아무렇지 않아 하는 일에 누군가는 불안, 강박 또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벌벌 떨기도 한다.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 《절규》는 현대인의 불안감과 강박을 상징한다. 울렁이는 선과 강렬한 붉은색의 배경은 혼란스러운 이의 내면을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

 

- 《절규》 모사작에 대한 뭉크의 노트

 

 

뭉크는 외로운 인생을 살았다. 어머니는 결핵으로 그의 나이 5살 때 돌아가셨고, 누이 또한 몇 년 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아있는 아버지는 고집스럽고 엄격했으며, 병적으로 종교에 집착했다. 이러한 아버지를 뭉크는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생클루.jpg

《생클루의 밤》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뭉크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전달받는다. 《생클루의 밤》은 아버지의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한, 뭉크의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액자 밖, 제3자의 관점으로 그림을 바라보아도 뭉크의 쓸쓸함이 바로 와닿는다.

 

뭉크의 사랑 역시 순탄하지 못했다. 뭉크의 첫사랑은 유부녀였으며, 당당하지 못한 사랑 때문에 그는 항상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비밀스러운 사랑마저, 결국에는 배신으로 끝이 난다. 유부녀는 뭉크를 버리고 새로운 불륜 상대를 찾아 떠났다. 전시장에서 뭉크의 《질투》를 보며 그의 첫사랑 이야기를 떠올렸다. 남자의 공허한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무섭게 느껴진다.

 

뭉크는 여성을 그린 작품들이 많은데, 여기에서 뭉크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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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슬픔에 잠긴 남자를 안아주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 그러나 제목을 보는 순간 그림을 더 이상 사랑스럽다고 할 수 없게 된다.

 

뭉크는 여자를 대체로 ‘유혹하는,’ ‘우위적인’ 존재로 그린다. 여성은 화려하고 에로틱한 반면에, 남성은 여자를 뒤에서만 바라보는 ‘수동적인,’ ‘무기력한’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화가가 사랑한 밤』을 통해 전시회도 다녀오고, 나의 꿈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이쁜 문체와 아름다운 그림이 어우러져,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치유 받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정우철 도슨트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한재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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