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섬뜩하고도 기괴한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9.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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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는 지금껏 본 적 없었던 분위기의 시였다. 시의 내용은 전혀 긍정적이지 않다. 로트레아몽은 시의 서두에 집적 ‘이 음울하고 독이 가득한 페이지들의 황량한 늪’이라는 표현을 쓰며 시의 전반적인 내용이 암울하고 어두울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가 보여주는 이미지들과 시에서 중간중간 등장하는 흥미롭고 신선한 표현들을 중점적으로 시를 읽었다.


시를 읽자마자 가장 먼저 들어왔던 표현은 ‘마치 물이 설탕에 젖어들 듯이 책이 뿜어내는 치명적인 독기가 그 영혼에 젖어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색다른 두 가지 표현에 눈길이 갔는데 하나는 ‘마치 물이 설탕에 젖어들 듯’이었고 다른 하나는 ‘책이 뿜어내는 치명적인 독기’였다. 우선 나는 전자의 표현을 <말도로르의 노래>를 읽는 사람들이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 시에 빠져들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 시에 ‘빠져 든다’는 해석보다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라는 해석에 더 중점을 뒀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는 굉장히 암울한 분위기의 시이다. 이런 암울한 시 서두에 작가가 직접 사람들이 어느 순간 빠져들 수 있다고 예고한 게 인상 깊어 이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책이 뿜어내는 치명적인 독기’

 

 

이 표현이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독기’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화자가 직접 책이 지니고 있는 것을 ‘독기’라고 정의내린 부분이 흥미로웠다. 동시에 작가가 정의내렸다고 생각했다. 로트레아몽이 자신이 쓴 작품이 ‘독기’를 지니고 있다 표현함으로서 작가 또한 시의 화자와 함께 작품을 암울하고 어둡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대의 발꿈치를 앞이 아니라 뒤로 돌리라’

 

 

이 뒤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표현이 나온다.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시에 빠져들지 말라 고하는 화자의 이미지가 강렬했다. ‘뒤이어지는 모든 페이지들을 모든 사람이 다 읽는 것은 좋지 않다.’라며 명확하게 단정 짓는 이미지가 오히려 시를 끝까지 읽고 싶게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쓰디쓴 열매’, ‘미개척의 황야’ 같은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를 읽어 내려갔다.

 

 

 

1. 영혼 - 섬뜩한 이미지


 

첫 번째 노래서부터 시의 장면이 빠르게 전환된다고 느꼈다. ‘겨울’이라는 계절을 언급하며 ‘두루미’가 ‘또하나의 길’로 들어서는 걸 서술한 장면과 그 다음 바로 이어지는 서술에서 ‘콧구멍’을 언급하며 ‘천사들’에 비유하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의 형태로 나는 두루미를 시에 깊게 파고들지 말라는 내용과 비유한 부분이 재밌었다. 시가 전개되면서 여러 인간상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두루미가 나왔던 장면은 인간이 나왔던 장면보다 더 우울하기 않고 올바른 길을 찾아 떠나는 생명들을 보여준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이 시에서 제일 암울하지 않았던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영혼들을 타락시키는 것을 보아왔다.’

 

 

시에서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영혼들을 타락시키는 것을 보아왔다.’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보통 화자가 영혼들을 타락시키는 주체가 되거나 반대로 타락한 영혼이 되는데 ‘보아왔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영혼이 타락하는 과정을 관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화자가 새로웠다. 그 후 섬뜩한 장면이 이어져 나오는데 이 장면을 읽으며 시가 암울함의 끝을 달리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모방’이라는 이유로 화자 스스로 본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나와 더 섬뜩함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나는 화자가 조용히 관망하는 태도를 계속 취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곧바로 ‘살을 찢었다.’라는 서술과 함께 그것을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여기는 화자의 모습을 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폭력도 마다 않는 모습이 오히려 영혼이 타락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웃음이 인간들의 웃음과 닮지 않았다는 것이, 다시 말해서 내가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내 눈에 분명히 드러났다.’
 

 

섬뜩한 이미지는 계속해 이어진다. ‘보름 동안 손톱을 길러야 한다.’라는 문장이 결국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시작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섬뜩했다. 죽음을 당한 누군가가 ‘아이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앞서 화자가 말했던 것처럼 발꿈치를 뒤로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굉장히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장면이라 생각했는데 화자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 오히려 아이 하나를 죽이는 과정에서 쾌락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의 섬뜩함이 읽는 내내 배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이 장면에서는 피를 마신다는 서술이 있고 아이가 계속해 운다는 서술이 있어서 시의 화자가 천사가 아닌 악마를 닮았다고 보았다. 화자는 ‘악인’의 이미지를 본 떠 만든 사람 혹은 악마 같았다.

 

 

 

2. 피 - 강렬한 이미지


 

가장 강렬한 이미지인 ‘’는 시가 두 번째 노래로 향했을 때도 계속해 나온다. 두 번째 노래에서는 기괴한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화자는 ‘술탄’을 언급하며 ‘방바닥을 더럽히는 이 피’를 ‘그 혀’로 씻겨 달라 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말도로르의 노래>가 ‘’을 다루는 시라고 확신했다.

 

화자가 말도로르의 몸에 많은 피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 얘기하며 방에 흥건한 피의 이미지를 서술하는 내내 당혹스러운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이유 역시 화자에게 가까운 것이 ‘선’보다 ‘악’이기 때문일 것이라 보았다. ‘마치 물이 설탕에 젖어들 듯’과 같은 표현은 정말 내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나 또한 이 시를 계속 읽고 이러한 장면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화자의 이러한 행동들과 섬뜩하고 잔인한 이미지에 거리를 두지 않고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기괴한 이미지를 더 얘기해보자면 화자가 ‘탐욕스러운 개’를 부르며 그 개의 행동을 서술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야 한다. 여기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네가 행복 속에서 헤엄친다고 생각하라.’라는 구절이었는데 화자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며 ‘탐욕스러운 개’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게 특히 인상 깊었다. 화자가 말하는 개는 말도로르의 피를 마시는 짐승이다. 조금 마신 것도 아니라 ‘머지않아 토할 것’이라 할 정도로 누군가의 피를 마신 짐승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피를 마신다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언급한 ‘개’ 또한 부정의 짐승으로 해석했다.

 

그런 짐승에게 화자는 ‘행복 속에서 헤엄친다’라는 표현을 한다. 나는 이 표현을 보고 화자가 ‘행복’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아주 가볍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여겼다. 화자가 말하는 ‘행복’이란 어디에서든 굉장히 쉽게 찾을 수 있는, 가벼운 무게인 단어라고 보았다. 시에서 그 이유가 나오는데 ‘만족감을 누리며, 망연한 사흘 동안 배고픔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행복의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행복’이 ‘술탄’, ‘영혼’, ‘피’, ‘타락’, ‘탐욕’ 같이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는 아니지만 이 시에서만큼은 가볍게 보인다 느껴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3. 창조주 - 경외 받지 못하는


 

두 번째 노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화자가 ‘창조주’를 언급하는 장면이었다. 보통 문학 작품에서 ‘창조주’란 절대신이거나 혹은 그와 동등한 위치를 가진 존재이다. 하지만 <말도로르의 노래>에서는 다르다. 화자는 창조주를 부르며 오히려 화자가 창조주 위에 있다는 듯 군다.

 

 
‘나를 기쁘게 해다오.’
 

 

위와 같은 표현을 읽으며 도대체 화자가 어떤 존재이기에 이러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는 또 ‘내 너에게 경고하노니’ 같은 표현을 통해 창조주에게 겁 먹지 않고 있다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나는 화자가 ‘신’ 혹은 ‘창조주’와 같은 존재, 인간들이 경외시하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섬뜩한 장면이 이어지면서도 ‘창조주’에게는 경외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 나와 흥미로웠다. 창조주가 인간을 질투한다 생각하는 화자의 이미지와 힘으로 대응한다는 화자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았다.

 

 
‘나를 죽여보라.’
 

 

도리어 위와 같은 발칙한 말을 하면서 창조주를 도발하는 듯한 행위를 보면서 화자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영원한 징벌의 가소로운 역량’이 곧 시에서 나오는 ‘창조주’에 대한 화자의 정의라는 것도 다른 의미로 충격이었다. 창조주와 신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화자는 많았지만 <말도로르의 노래>는 그것과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화자를 넘어 로트레아몽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악’에 가까운 행동을 일삼고 ‘창조주’를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며 나는 계속해서 화자가 ‘악인’ 또는 ‘악마’와 가까운 이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4. 마지막으로...


 

역시나 시는 여섯 번째 노래로 향할 때까지 음침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렇기에 읽기도 굉장히 힘들었다. 각 노래마다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이 너무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나와 화자의 심리를 파악하려 했지만 다 실패로 돌아갔다. 마지막 노래에서는 그냥 읽었다. 화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된 느낌으로 시를 그저 읽기만 했다.

 

‘시체가 살아 있는 기미라도 보일 때, 땅에 내려놓고 모루로 쳐서 가루를 내버릴 것이다.’라고 말하는 화자의 태도를 이해하는 건 무리였다. 앞에서 몇 번 언급했던 것과 같이 화자는 ‘악’을 이루는 모든 면들을 다 경험해본 느낌이었다. 섬뜩하면서 기괴한 이미지의 나열이 <말도로르의 노래>의 전반적인 감상이었다. 우리가 ‘노래’를 떠올릴 때는 대부분 ‘순수의 이미지’나 ‘깨끗함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는데 ‘말도로르’가 부르는 ‘노래’는 오로지 ‘악’을 위한 것이어서 그 점이 흥미로웠다.

 

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변함도 없이 ‘악’을 다양한 형태로 다루어 이미지의 잔상이 오래 남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자르고 토막 내며 가루로 만들어버리고 칼로 자신의 입을 찢는 화자란 내가 읽어왔던 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내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신’의 이미지 또한 여타 다른 시들과 다르게 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겨져 읽으면서 기억에 남았다. 물론 지금까지 이어온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지만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는 책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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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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