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이 맞을까 - 시뮬라시옹 [공연]

글 입력 2024.09.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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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딸을 VR을 통해 다시 만나는 한 엄마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딸의 모습에 딸을 안기 위해 손을 허우적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함께 울면서 몰입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감동적인 영상이었지만 현실에서 상용화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운 이를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쁘겠지만 과연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최근 몇 년 사이 가상세계를 통해 그리운 이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들이 제작되고 있다. 지난 6월 개봉된 영화 <원더랜드>도 비슷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까지도 먼 미래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 듯하다.


과연 미래의 인류는 시뮬라시옹과 같은 기술이 상용화되었을 때 어떻게 적응해나갈까.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그 일을 미리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토요일 연극 <시뮬라시옹>을 통해 잠시나마 미래의 기술이 도입된 후 인류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연극 <시뮬라시옹>은 2034년을 배경으로 하며, 자율 주행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AI로 복원된 아내와 재회하는 이야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연극을 관람하기 전에는 감동적인 재회 스토리라고 생각했지만 연극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기술의 도입으로 달라진 인간관계 변화에 대해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시뮬라시옹


 

이야기는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선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선욱은 직장동료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반려견을 AI로 복원한 모습을 보며 시뮬라시옹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다. 선욱은 아내 상아를 AI로 만나기 위해 상아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고 AI 상아를 만난다.


선욱은 몇 년 만에 만나는 상아의 모습에 어색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아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상아가 만든 마카롱을 먹어보기도 하고, 상아와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상아의 행동 패턴이 비슷해지자 상아를 더 실제와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 그렇게 점점 상아가 실제화될수록 선욱은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알게 된다.


상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 선욱이 생각하는 것처럼 밝은 모습이 아니었다. 사실 상아는 무뚝뚝한 선욱으로 인해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 사고가 나기 전 이탈리아 여행을 간 것도 혼자가 아닌 상아가 그림을 배우던 화실 주인과 동행한 사실도 알게 된다.


선욱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며 상아와 다투게 된다. 다투는 과정에서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선욱은 상아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한다. 시뮬라시옹 프로그램을 처음 쓰게 되었을 때의 선욱은 오랜만에 상아의 모습을 보게 돼서 행복했지만 점차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아의 모습을 알게 되며 끝내 선욱은 자신이 기억하는 밝은 상아의 모습을 다시 만나기 위해 초기화를 선택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극을 보며 가장 많이 떠올렸던 생각은 과연 우리가 기억하는 누군가의 모습은 정말로 그 사람이 맞을까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특히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억은 좋은 쪽으로 미화되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이 실제라고 완전히 단정 지을 수 없다.


선욱은 자신이 기억하는 상아의 모습이 아니자 상아에게 화를 낸다. 싸우고 나서도 선욱은 상아와의 다툼을 해결하기보다 프로그램을 초기화하는 선택을 한다. 선욱의 모습은 회피로 보인다. 극 초반 상아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선욱은 사라지고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상아의 모습을 보고 싶은 선욱만이 남는다. 기술을 통해 인간은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하나의 옵션이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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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물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가상세계로 만나볼 수 있다는 기술의 의도 자체는 상실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복원한 AI는 생전에 존재하던 데이터만을 축적시켜서 만든 것일 뿐 선욱과 상아가 다툰 것처럼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또한 선욱이 자신이 기억하는 상아의 모습과 실제 상아 간의 괴리로 힘들어했던 것처럼 시뮬라시옹을 쓰면 쓸수록 그 괴리감에 아파하고, 결국 다시 초기화하며 점점 피폐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뮬라시옹과 같은 기술이 미래에 상용화된다면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잊어버리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이 든다. 우리가 가족, 친구,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느끼는 이유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AI는 완벽하게 구현할 수는 없겠지만 시뮬라시옹과 같은 기술이 상용화되어 다시는 못 보는 인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자신이 원하는 상아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던 마지막 장면의 선욱처럼 관계의 소중함을 잊어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를 시뮬라시옹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만나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그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맞는 걸까. 어떤 선택이 맞는 건지는 사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시뮬라시옹이 상용화될 가능성이 있다면 연극을 통해 미리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고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임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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