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동시대와의 소통을 고민하는 국악 - 수림뉴웨이브 '독파' 김준영, 김현희 연주자

글 입력 2024.09.2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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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모든 예술인의 고민이 아닐까. 국악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교과서와 대중매체에서 접하는 국악의 한정적인 모습과 달리, 실제 국악계는 국악으로 어떻게 동시대와 소통할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국악인으로 가득하다. 수림문화재단의 ‘수림뉴웨이브’는 그러한 ‘오늘의 국악’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획이다. 특히 올해는 ‘독파’를 주제어 삼아 홀로, 자기만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아티스트를 만나고 있다.


지난 10일, 독파 무대에 오르는 20인의 아티스트 중 김준영, 김현희 연주자를 만났다. 김준영 연주자는 거문고를, 김현희 연주자는 해금을 30여 년간 연주해 왔다. 이제는 자신의 몸이나 다름없을 만큼 익숙해진 악기지만, 여전히 음악으로 하고 싶은 말은 새롭게 생겨난다. 때로는 바깥으로 멀리 뻗어 나가고, 때로는 내부로 깊어지는 이들의 국악과 예술 이야기를 들어본다.

 

 

 

악기의 본질에 집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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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준영 거문고 연주자, 김현희 해금 연주자 © 박주영, 수림문화재단

 

 

자기소개와 함께 지금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현희(이하 ‘현’): 안녕하세요, 해금 연주하는 김현희입니다. 올해 제게 큰 공연이었던 독파를 마치고 이제는 하반기에 있을 ‘해금 앙상블 셋닮’이라는 팀 공연 연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김준영(이하 ‘준’):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입니다. 평소에는 국립국악원 소속으로 공연을 하고, 거인아트랩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이끌며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작업을 하기도 해요. 공연 연출, 음악감독 일에도 관심이 있어요. 그래도 거문고 연주자로 소개되는 것이 역시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두 분 모두 독파 공연을 마치셨는데, 소감을 들려주세요.


현: 올해 무반주 해금 공연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독파라는 좋은 기획을 만나 함께할 수 있었어요. 평소 제 공연에는 전공자 관객이 대부분인데, 이번 공연은 일반 관객이 많아서 새로웠어요. 무대에 서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준: 현희 씨 말처럼 일반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어요. 제 연주로 거문고를 처음 접하는 분도 있을 테니 같은 곡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더 풍부하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연에 임했죠. 또, 한 아티스트에 온전히 집중한다는 독파의 기획에 맞게 저도 제 음악세계를 최대한 잘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독파에서 들려주신 곡들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셋리스트 중 한 곡 정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준: 제가 만든 곡 위주로 가져왔는데, 그중에는 독파를 위해 만들어 그날 처음 선보이는 곡도 있었어요.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라는 곡이에요. 제목은 니체의 책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 왔어요. 우리는 지금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를 통해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데, 사실 행복이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세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보여주려 했습니다.


현: 많지 않은 해금 독주곡 중에서도 해금이 아니면 표현이 안 되는 곡들을 선곡했어요. 마지막 순서로 연주했던 ‘줄놀이’가 대표적이죠.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연주하는 손이 정말로 줄놀이를 하듯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곡이에요. 연주곡이면서도 무대 위에서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표현되는 곡이죠.

 

 

공연 현장은 어땠는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준: 관객층을 고려해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했어요. 벨기에 작곡가인 보드앙 드 제(Baudouin de Jaer)의 작품을 연주하는 순서였죠. 완결된 하나의 곡이 아니라 A부터 Z까지 여러 개의 짤막한 피스로 구성된 형태인데, 관객이 추첨으로 뽑은 피스들을 즉석해서 재조합해 연주했어요. 추첨할 때 거문고 연주할 때 쓰는 술대를 뽑기로 사용하고 선물로 드렸더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특히 어린이 관객이 좋아해줘서 기억에 남아요.


현: ‘이것이 해금이다’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서 해금에서만 나는 소리를 부각시키려 노력했어요. 앞서 언급한 ‘줄놀이’의 경우 일반 관객의 반응을 만날 기회가 적은 곡 중 하나라서 좀 더 신경이 쓰였는데요, 실제로 봤을 때 정말 줄놀이를 하며 널뛰는 모습처럼 느껴지기를 바라며 열심히 했습니다.

 

 

 

김준영의 거문고, 김현희의 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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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영, 수림문화재단

 

 

독파는 관객도, 아티스트도 한 악기에 깊게 몰입하는 시간이었죠. 공연에서는 다 듣지 못한 악기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두 분이 각자의 악기에서 좋아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현: 해금은 연주자에 따라 소리가 크게 달라지는 악기 중 하나예요. 지판이 없어서 손의 감각으로만 음정을 잡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엄청난 연습이 필요한데, 연주자로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기는 좋은 악기죠. 


그게 때로는 너무 힘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금이 좋아요. 내가 하기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고, 시간을 쏟을수록 소리가 달라지는 게 실감 나니까 재미있어요. 깨기 어려운 게임을 할 때처럼 중독성 있죠. 해금 소리가 너무 낑낑대서 시끄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저는 한 번도 해금 소리가 그렇게 느껴진 적이 없어요.


준: 어릴 때는 내가 거문고를 연주함으로써 소중한 걸 지킨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지키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요. 거문고는 한 번 쳤을 때 빈 공간 사이로 울림이 생겨나 퍼져나가는 느낌이 참 좋지요.


음색이 다양한 것도 거문고만의 개성이에요. 예를 들어 가야금은 줄 굵기 차이가 극심하지 않아서 가장 낮은 음과 가장 높은 음의 음색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요. 첼로, 바이올린도 그렇고요. 반대로 거문고는 선율을 만드는 두 줄인 유현과 대현의 차이가 정말 커요. 그래서 한 악기 안에서 어둡고 두꺼운 소리와 밝고 날카로운 소리가 함께 나는 게 특징입니다. 거기다 선율을 수식하는 개방현도 얇은 줄 굵은 줄이 섞여 있어 더 풍성한 음색이 납니다.

 

 

두 분이 하시는 말씀에서 악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다른 악기가 부러웠던 적은 없나요?


현: 거문고와 해금의 구조, 그러니까 소리를 내는 원리는 똑같아요. 그런데 해금은 두 줄밖에 없는 반면 거문고는 두 줄에다가 수식하는 줄 네 개가 더 있으니, 여러 음을 동시에 더 풍성하게 낼 수 있는 건 좀 부럽죠. 비유하자면 해금은 볼펜 한 줄로만 계속 그리는 건데, 그런 면에서는 약간 한계가 있죠. 해금 독주가 드물고,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될 때가 많은 이유예요.


준: 해금은 거문고보다 선율을 훨씬 더 매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게 가끔 부러워요. 거문고는 구조상 음이 끊어질 때가 많고 선율에 도약이 있을 때면 매끄럽게 소리 내기가 어렵거든요. 반면 해금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사람 심금을 울리죠.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역시 해금밖에 못 하는 것 같아요.

 

 

각 악기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곡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현: 아무래도 해금이 처음이라면 우선 이지리스닝 위주의 곡을 들으면 좋을 듯해요. 정수년 선생님의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앨범을 추천드려요. 더 나아가 해금만의 매력이 살아나는, 해금만이 할 수 있는 곡에 관심이 생겼다면 제 음반 [고도의 이면] 수록곡을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정대석 선생님의 ‘고구려의 여운’을 추천드려요. 거문고 특유의 강인하고 단단한 느낌이 나는 곡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공연하면 호응이 좋은 곡 중 하나예요.

 

 

 

동시대로 뻗어나가는 국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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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영, 수림문화재단

 

 

독파 공연을 직접 보고 느낀 것 중 하나가 국악계에서의 창작의 결이 엄청나게 다양하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어떤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들려주실 수 있나요?


현: 국악에 큰 관심이 없으면 ‘국악’이라 했을 때 정말 옛날 음악 아니면 대중음악 퓨전 둘 중 하나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 둘이 양극단에 위치한다면 대부분의 국악인은 그 사이에 존재하고, 거기서 창작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국악인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시대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거든요.


준: 국악계가 전통을 지키는 사람과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 엄격하게 양분되어 있지는 않아요. 대부분은 둘 다 하죠. 한 사람이 전통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할 수도 있거든요. 창작도 정말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흔히 생각하듯 서양식 작곡법을 바탕으로 하는 창작만 있는 게 아니라 전통적인 방법론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서양식도 우리나라 전통식도 아닌 그 사이에서 제3의 방식을 만들어내려는 사람도 있죠.

 

 

‘퓨전’이라는 단어가 국악계의 다양한 창작을 납작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같기도 하네요.


현: 국악계에서는 이제 ‘퓨전 국악’이라는 단어조차 잘 사용하지 않으려 해요. 예전과 달리 퓨전이라 해도 대중성에만 초점을 맞추지도 않고요. 국악기로 단순히 지금 유행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건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별 이점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국악의 본질을 찾아 발전시키고 현대적인 언어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다른 장르, 다른 악기와 일대일로 대등하게 만나는 작업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준: 단순히 국악기로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류의 퓨전은 더 이상 새롭지 않지요. 그건 서양악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해 왔으니 백 년이 넘은 거예요. 그럼에도 아직까지 ‘퓨전’이라 하면 많은 사람이 그런 형태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는 게 아쉬워요. 창작의 범위를 조금 더 넓게 생각하신다면 국악을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현: 한편으로는 매체에 노출되는 게 아예 사극에 나올 법한 옛 음악 아니면 대중음악 중심의 퓨전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쉽지만, 대중매체는 대중적인 걸 다룰 수밖에 없잖아요. 지금 활발하게 일어나는 국악계 창작이 궁금하시다면 공연장에 오시기를 추천드려요. 독파도 좋은 선택입니다.

 

 

독파는 한 아티스트를 깊게 알아가는 기획이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이 예술가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고민 같은 게 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준: 거문고 자체는 옛날 악기지만 저는 지금 이 시대에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으로서 거문고로 우리가 사는 삶을 나눌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계속 그 방법을 찾아보려 해요. 또 다른 예술 분야와 함께하며 거문고의 영역을 넓혀가는 작업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현: 저는 조금 다른데, 저 자신 안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요. 어떤 작업을 할 때 일단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자기검열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물론 다른 사람과 만나고 다른 장르와 교류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것도 일단 내가 완성되어야 할 수 있다고 믿기에 저한테 힘을 많이 쏟아요. 어떤 작업이든 가짜를 보여줄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은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현: 나 자신을 갈고닦는 데 집중하던 시기를 지나, 어느 순간 더이상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리’액트(Re-Act)입니다. 다른 장르, 다른 예술가와의 소통을 해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로, 수림문화재단에서도 한 번 공연을 했어요. 앞으로도 이 작업과 함께 저만의 해금 연주를 계속하고 싶어요


준: 저도 여러 가지 장르와의 만남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연기자와 함께 공연을 해보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극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거문고 연주와 함께 텍스트를 낭독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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