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탐욕하여(貪) 갖고자(求) 하는 사랑의 결말은 - 사랑의 탐구 [영화]

글 입력 2024.09.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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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탐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사랑의 탐구>의 프랑스어 원제는 ‘Simple comme Sylvain’이다. 직역하면, ‘실뱅처럼 단순한’이 된다. (실뱅은 극 중 주요 인물의 이름이다.) 한편 영제는 ‘The Nature of Love’, ‘사랑의 본질’로, 우리말 제목인 ‘사랑의 탐구’는 여기서 좀더 매력적인 어감으로 변형한 결과로 보인다. (영제를 원제와 아예 다르게 설정한 것은 감독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실은 개인적으로 한국어 제목의 ‘탐구’라는 표현에 갸우뚱하게 되는 지점이 있어 원제를 찾아보게 되었다. 보통 ‘탐구’라고 하면 ‘필요한 것을 조사하여 찾아내거나 얻어냄(探求)’이라는 의미, 혹은 ‘진리, 학문 따위를 파고들어 깊이 연구함(探究)’을 가리키는 의미를 연상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렴풋이 이 영화를 보는 시간이 사랑에 대해 의식적이고 면밀하게 탐구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오프닝 시퀀스까지만 해도 예상이 들어맞는것 같았다. 저녁 모임에서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흔들며 인류의 본성, 가치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해 논하는 고상하고도 고약한 대화의 핑퐁이 길게 이어지는 게 그 증거로 보였다. 하지만 다음 날 주인공은 보수를 위해 찾은 숲 속의 별장에서 처음 만난, 파트너가 아닌 새로운 연인과의 사랑에 속수무책으로(혹은 그런 양 하며) 빠져들었다. 새로운 연인의 이름이 바로 실뱅. 주인공은 정말 ‘실뱅처럼 단순’하게, 그러니까, 멍청하고도 명료하게 새로운 사랑에 뛰어든다.

 

실뱅이 등장한 순간부터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에 기꺼이 휩쓸린다. 그런 그에게서 탐구자의 면모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대학 강사인 그는 강의 도중 플라톤, 쇼펜하우어, 스피노자, 장켈레비치, 벨 훅스 등 여러 유명 철학자의 사랑에 대한 견해를 인용하며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지만, 상충하는 견해를 논리 없이 상황에 따라 가져다 읊는 것은 사랑을 명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랑의 정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따라서 영화에 걸맞기 위해선 ‘탐구’의 또다른 의미를 가져오는 게 맞겠다. 세 번째 의미, ‘욕심을 내어 가지려 함(貪求).’ 어째서인지 모든 면에서 완전한, 이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랑을 탐구貪求하는 데 몰두하는 주인공은, 마땅히 눈보라치는 외로움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여기서 ‘마땅히’라는 것은, 그가 파트너와의 신의를 저버리는 불륜을 저질러 도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특히나 한국에서 ‘유교걸’로 자란 내게는, 외도라는 행위 그 자체도 크게 문제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보다는 그린 듯 완벽한 사랑의 허상을 통해 ‘happily ever after’로 마무리되는 동화 속 처럼 영원한 행복을 탐구貪求했다는 점에서, ‘마땅히’ 그는 근원적인 고독을 다시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 <사랑의 탐구>를 더 흥미롭게 보려면 알아야 할 두 가지 포인트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 <사랑의 탐구>는 미쟝센이 다채로운 영화이다. 예를 들자면 샷 사이즈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빠른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하고, 인물의 움직임을 팔로우하여 컷을 전환하지 않고 역동적으로 공간을 드러내는 샷, 또 컷 전환 없이 포커스만을 이동하여 여러 인물의 정서를 전달하고 인물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샷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어떤 느낌이 전달되는지 생각하면서 보면 더욱 재미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사랑의 탐구>는 매우 ‘퀘벡스러운’ 영화라고 한다. 퀘벡에서는 경제적인 계급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계급이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주요 인물의 대사와 행동에서 퀘벡의 문화 상류층과 서민 계층 사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인물의 감정선도 훨씬 잘 따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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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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