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회사원이 아닌 나는 누구일까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9.2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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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회사 직원 아니시구나’


그 말이 뭐라고 귓가에 오랫동안 남아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회사원은 소속에서 제외되면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고, 직함이 사라지면 나는 무소속의 인간이 되고 만다. 전문지식과 기술이 없는 나는 회사에 매달려 있는 게 살길이었다.

 

그런 내가 회사를 퇴사해버렸다. 회사의 일원이 아닌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무엇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일까 고민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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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이 아닌 doing을 찾다


 

내가 생각하는 회사 장기근속의 제 1조건은 순응성이다. 상사가 시키는 일을 ‘네’ 하고 군말 없이 해내는 성향의 사람이 결국 회사를 오래 다닐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온전히 내 생각대로 이끌어 가야 직성이 풀렸고, 군말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따르는 일은 삶의 무기력을 목구멍까지 끌어올렸다.

 

나는 과연 회사가 적성에 맞는 사람일까. 소유하고 있는 직업, 직책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얼 할 수 있는 사람이지? 회사의 일원으로서 권한이 사라지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내가 나의 재능과 능력으로 무엇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다.


회사에서 내 목소리는 허용되지 않았다. 매번 상사의 의견을 따라야 했고, 그들은 내가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연필로 죽죽 그어, 본인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 늘 불만이었다. 내 생각과 표현방식이 왜 부정당하고 수정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뭔가 이게 아닌 것 같다,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며 사는 꿈은 회사일에 밀려 묵은 채로 방치되었고, 사무원으로서 정말 사무적인 삶을 살았다.

 

 

 

에디터로서 글을 쓰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멋있고 신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왜 그런지 글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이런 내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은 마음 편히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었다.


내 생각대로 글을 쓸 수 있고, 그것이 수정당하지 않고 존중되었다. 물론 매주 글감을 생각해 내 한 편의 글을 작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을 쪼개 틈틈이 원고를 작성했다. 체력의 한계가 오는 듯했다. 어떤 날을 정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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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삶과는 달랐다. 무엇이든 생각해 내기 위해 찾아보고 일기장을 뒤져보며 내가 말할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내 삶의 곁을 항상 지키고 있는 것들, 마음을 채워주는 것들을 되돌아보며 내 삶을 구성하는 소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 1회씩 주기적으로 글을 쓰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진 느낌이었다. 회사원이었던 나는 업무의 선택권이 없었고, 배정받은 일을 해내야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곳에서의 나는 스스로 글감과 주제를 정해 활동할 수 있었다.

 

그만큼의 부담과 책임감 또한 컸지만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내간다는 기쁨이 더 컸기에 정진해갈 수 있었다. 글 쓰는 곳간에 양식을 쌓듯 글이 쌓여갈 때마다 뿌듯함이 커졌다. 글을 쓸 때 스스로 몰입하고 주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나의 모습이 좋았다.

 

 


삶의 자신감은 어디서 올까

 

우리 사회는 직업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회사와 직업을 공식적으로 획득하게 되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소득의 안정적인 직업과 명예가 생활을 풍요롭고 안락하게 만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직업인 이외,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찾는 일에 소홀한 것은 사실이다. 돈을 버는 직업인이 아닌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도 찾지 못한 정체성의 부재는 돈, 명예로 채울 수 없는 삶의 공허를 만들어 내는 주범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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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기쁨과 만족감은 어디서 올까.

 

성적, 수상, 상금 등 사회에서 인정받고 보상받는 일이 아니더라도, 글 써서 밥 먹고 살겠냐는 말을 들어도, 오랜 기간 동안 정진하는 끈기와 정신력이 자신감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재능을 기술로 연마하는 데는 분명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재능의 기반을 닦고,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입혀 노련하게 작업해 내는 사람이 되기까지 최소 10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해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퇴사, 은퇴 등 더이상 소속된 구성원의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자립된 한 사람으로서 역할과 가치를 확신하며 살아가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매일의 성실함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작은 기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에디터 활동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고 단련할 길이 먼 수련생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으며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내려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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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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