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값의 관점에서 바라본 미술 - 그림값 미술사 [도서]

글 입력 2024.09.21 20: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그림값미술사_표1.jpg

 

 

술집에 앉아 있던 한 화가가 건너편에 앉은 할아버지를 보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저 할아버지에게 갚지 않은 돈이 있구나.’ 그 길로 화가는 작업실에서 자신의 그림을 한 수레 가득 끌고 와 할아버지에게 돈 대신 이 그림들이라도 받아달라 하였으나, 할아버지는 괜찮다며 사양하였다. 이 일화 속 할아버지는 뉘마 크로앵, 화가는 무려 빈센트 반 고흐였다. 이 책의 프롤로그 내용 중 일부이다.


시작부터 적잖은 놀라움을 주는 프롤로그의 해당 일화에서 우리가 떠올려볼 수 있는 생각이 몇 가지 있다. 할아버지가 그림을 받지 않은 것이 정말 정말 아깝다는 것, 그때 당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분명 지금만큼의 가치는 없었다는 것. 그렇다면 고흐의 그림은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어떻게 현재에 와 재평가될 수 있었을까? <그림값 미술사>는 미술의 역사에서 그림값이 어떻게 매겨졌는지를 다음의 9가지 요인에서 살펴보고 있다.


VIP의 소장작, 희귀성, 미술사적 가치, 스타 화가의 사연 많은 작품, 컬렉터의 특별한 취향, 투자의 법칙, 구매자의 경쟁심, 뜻밖의 행운, 명작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이 중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희귀성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예술의 거장들이 있다. 지금까지도 라이벌로 여겨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다. 이들의 작품에는 그림값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 작용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데생 작품인 <말과 기수>의 값은 2001년 경매에서 약 149억 원에 낙찰되었다. 작품의 크기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삽화 사이즈와 동일한 11.9 X 7.9cm에 불과하다. 미켈란젤로의 데생 <예수의 승천>은 A4 사이즈 종이보다는 조금 작고, 다빈치의 <말과 기수>보다는 조금 큰 수준이다. 이는 2000년 경매에서 약 160억 원에 낙찰되었다.

 

연필이나 목탄으로 스케치하듯 그린 이 그림들이 이렇게나 고가에 거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141.jpg

레오나르도 다빈치, <말과 기수> (1480년경)

 

 

정답은 ‘희귀성’에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은 15점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그마저도 곳곳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 경매에 나온 작품 수가 지난 30년 동안 5점도 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는 주로 조각가로 활동했기에 그림이 매우 귀했고, 지난 20~30년간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경매에 나온 경우는 5건뿐이었다.

 

개인이 이들의 작품에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인데, 그나마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데생’인 것이다.


 

 

구매자의 경쟁심


 

미술 작품이 거래되는 공간을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간이 ‘경매장’이다. 사고 싶은 물건에 남보다 경쟁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해 결국 최고가를 부르는 사람이 작품을 가져가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한 번쯤 본 듯하다. 이러한 경매를 통한 작품 거래는 ‘구매자의 경쟁심’을 가장 잘 보여준다.

 

 

131.jpg


 

이탈리아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 <걷는 남자 I>의 2010년 경매 최종 낙찰가는 약 1,356억 원이었다. 회화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조각 작품 치고는 많이 비싼 편이다.

 

심지어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걷는 남자> 조각은 일종의 ‘시리즈물’이다. <걷는 남자 I> 이외에도 무려 10점의 쌍둥이 조각 작품이 더 있고, 그의 작품 <서 있는 여인 II>는 약 357억 원에 거래되었다. 시세에 비해 최종 낙찰가는 너무나도 높은 금액이다.


<걷는 남자 I>을 그 비싼 금액에 차지한 주인공은 ‘릴리 새프러’라는 컬렉터였다. 릴리 새프러는 이전에 <걷는 남자>의 다른 에디션을 구매하는 데에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이 그녀의 승부욕을 자극한 듯했다. 책에서 ‘신중한 컬렉터’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결국 승부욕이 신중함을 이겨 <걷는 남자 I>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비싼 작품이 되었다.


문득, ‘희귀’라는 키워드 자체가 참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그 어떤 단어를 붙여도 값이나 가치가 펄쩍 오른다. 희귀해진 ‘무언가’는 사람들의 소장 욕구, 즉 ‘승부욕’까지 덩달아 자극해 경매장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뭔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져 계속 생각해 보니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몇 배 부풀려진 가격에 거래되던 허니버터칩, 먹태깡, 두바이 초콜릿이 스쳐 지나간다. 작은 경매는 우리 주위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그림값 미술사>에서 그림값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들로써 그 자신을 더욱 견고히 한다. 스타, 인플루언서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에 이끌려 구매 또는 결제 버튼을 쉽게 클릭하는 것, ‘한정판’,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글자가 보이면 갖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드는 것 등. ‘그림’값 ‘미술’사를 비롯한 ‘_값 _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김지현.jpg

 

 

[김지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