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때로는 단순한 것이 [음악]

<짱구는 못말려> 애니메이션 다시 보기
글 입력 2024.09.2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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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찬란한 미래를 꿈꾸지 않았던 사람 있을까. 암울함의 동굴을 파내려가던 순간에도 한편으로는 우스운 성공을 떠올리곤 했다. 운이 좋게도 가진 것은 인복인지라,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긍정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한 사고가 북돋는 열정과 의욕,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나 강요하는 성장과 도전의 정신을 심어주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꿀처럼 달콤한 성공의 미래는 아찔하고 짜릿했다.

 

그러나 한 단락만에 상황이 바뀌어,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삶의 다음 단계에는 무엇이 있나 생각한다. 이 나이에는 무언가 되어 있어야 했는데, 하물며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몇 년 새에 거둔 것도, 얻은 것도 없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슬퍼하는 시기가 왔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어른이’들에게도 여전히 위로가 되는 목소리가 있다. 동심이라곤 잊고 살던 상처 남은 마음에 따스한 입김을 후 불어넣어주는 노래가. 누구나 사랑하는 <짱구는 못말려>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에 수록된 노래들이다. 현재 일본 기준 31기까지 발표된 극장판 가운데, 두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곡을 소개하고 싶다.

 

*   *   *

 

오래도록 잊힌 영화관에서 쉴 새 없이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보면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스토리의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 극장판에 애정을 느끼게 된 것은 오로지 엔딩곡, NO PLAN이라는 가수의 <◯(マル)あげよう(동그라미를 주자)> 때문이었다.

 

 

普通の人なんかにゃ なりたくない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野球選手になって パイロットになって カッコいい車に乗って…

야구 선수가 되거나, 파일럿이 돼서 멋진 자동차에 타고…

 

叶えるのが夢だけど 叶わなくても夢は夢さ

꿈은 이루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루지 못해도 꿈은 꿈이야

 

(중략)

 

泣いて笑ってそれが人生 平凡な毎日に…

울고 웃는 것이 인생이야, 평범한 일상에…

 

人は変わってくモノだけど 人は変わらぬトコも良くて

사람은 변해가는 존재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점도 있지

 

波瀾万丈 十人十色 情けない自分にも ○(マル)あげよう!

파란만장 가지각색인 한심한 자신에게도 동그라미를 주자!

 


 

습관적으로 자기에게 엑스(X) 표시를 찍어버릴 때가 많다. 완수하긴 했지만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고, 잘했다는 칭찬이 없으면 스스로가 한심해지고, 그럭저럭 현상 유지나 하는 피로한 삶의 순간이. 그럴 때마다 지금껏 쌓아온 산을 조금씩 깎아내는 기분이 든다.

 

하루하루를 별 의미 없이 살아가는 현재, 그러나 대단한 미래를 상상하던 과거를 떠올리면 다시금 한심해지는 오늘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한심한 자신에게도 동그라미를 주자!”라는 가사는 더욱 따스하게 다가온다. 어릴 적 숙제장에 선생님께서 써 주시던 “참 잘했어요!”나 피아노 연습을 끝낼 때마다 메모장에 그려진 과실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던 순간처럼, 오늘을 살아낸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대단한 표현이나 현란한 솜씨 없이 담백하게 그려진 동그라미. 그것이 때로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분명한 감동을 준다.

 

*   *   *

 

형제자매가 있다면 누구나 마주할 싸움의 순간, 푸딩을 가지고 짱아와 싸우고 난 뒤 집을 뛰쳐나온 짱구는 이윽고 일생일대의 문제에 부딪힌다. 짱아가 어떤 행성의 공주가 되지 않는다면 지구가 멸망해버린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한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짱구는 동생을 지킬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우주를 지킬 것이냐는 곤란한 질문에 시달린다.

 

그리고 정답 없는 이 논쟁의 의미는 엔딩곡에서 드러난다. 그 곡은 ‘渡り廊下走り隊7’이라는 가수의 <少年よ 嘘をつけ!(소년이여 거짓말을 하라!)>이다.

 

 

僕の家の庭には キリンがいるとか

우리 집 정원에는 기린이 있다던가

 

昨日塾の帰りに UFOを見たんだとか

어제 학원에서 오는 길에 UFO를 봤다던가

 

そんなことを話して 馬鹿にされたって

그런 이야기를 해서 바보 취급을 당해도

 

そんな嘘の一つから 未来は始まるんだよ

그런 거짓말 중의 하나에서 미래가 시작되는 거야

 

いつの日か キリンが専門の 学者になるかも

언젠가 기린 전문학자가 될지도 몰라

 

宇宙飛行士になるのかも そんなもんだよ

우주비행사가 될지도 그런 거야

 

(중략)

 

言いたい事言って やりたい事やって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そのうちのいくつかは 嘘のまま終わって yeah

그 중 몇 개는 거짓말인 채로 끝나고 yeah

 

(중략)

 

自分が思うように 風呂敷を広げろ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허풍을 쳐봐!

 

嘘もホラもそのうち 実現するんだ yeah

거짓말도 허풍도 곧 실현될 거야 yeah


 

어느새부턴가 ‘입 밖으로 내뱉은 꿈은 이루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을 거두고 살지 않았던가? 덕분에 가벼운 흥미, 잠깐의 관심에도 책임감을 느끼며 점점 자기 세계의 폭을 좁히게 되기 마련이다. 이 노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괜한 책임감 따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어린아이가 말할 것 같은 우스운 장난, 현실이 조금 반영된 거짓말, 그러한 것들이 훗날 울창한 나무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금 이번 극장판의 내용을 되살려보면, 짱구는 동생 짱아와 우주의 미래 가운데 양자택일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마침내 짱구는 둘 다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의 애니메이션 다음으로 등장한 엔딩곡에 대하여, 한 댓글에서는 작품과 노래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갈무리한다.

 

짱아와 지구, 둘 중에 선택하라는 뒹굴리우스에게 둘 다 포기하지 않겠다 외치는 영화의 내용, 그리고 현실에서도 가벼운 거짓말을 쳐보라는 노래의 가사가, 꿈과 현실 그 무엇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고.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우리 어른들에게도 이렇게나 진심 어린 사랑을 받는 것은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아이 같은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   *   *

 

어느덧 나이가 들어 만화는 손 뗀지 오래, 흥미 없는 자기개발 영상이나 들쑤셔보는 지금이 왔다. 그럼에도 이러한 작품과 신나는 노래가 반갑고 고맙다.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던 나 자신, 그리고 여전히 품고 있는 순수한 꿈을 일깨워주는 것은 현실의 존재가 해줄 수 없는 것이니까.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이런 것이노라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 다음의 세대를 떠올려본다. 이러한 내용의 작품을 만들고, 이러한 가사를 쓰는 사람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러한 지지를 받고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까. 타인에게 조금은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될까, 어떤 시점의 자신임을 막론하고 언제나 자기 마음을 들쑤시는 열정을 깨우치며 살게 될까, 오랜 슬픔과 무력함을 느껴도 마침내 자신과 삶을 긍정하는 근사한 어른이 될까. 그런 것을 떠올리면 다시금 고마워진다.

 

현재의 어른에게도, 미래의 어른에게도, 이미 지나온 어른에게도 순수함의 힘으로 그들이 숨겨놓았던 진심을 간파하는 작품과 노래들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단지 ‘어린이 만화’ , ‘소년 만화’라는 타이틀에 갇혀 사그라들지 않기를, 이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 속에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할 줄 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인물이 앞으로도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서지원 컬쳐리스트.jpg

 

 

[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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