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벽돌갤러리 :: 치유 治癒 Recovery

글 입력 2014.10.06 01:0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치유2.jpg

 
치유治癒-recovery展에 대한 단평
 
홍지석 | 미술비평
    
<치유>展은 대부분 20~30대에 속하는 젊은 조각가들의 기획전이다. 나로서는 ‘치유’라는 명칭보다도 그 영어 번역어로 채택된 'recovery'라는 단어에 흥미가 가는데 왜냐하면 이 단어는 통상 ‘치료’로 번역되기 보다는 ‘회복’이나 ‘되찾음(회수)’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치유’라는 단어에 좀 더 부합하는 영어 단어는 차라리 요즘 유행하는 ‘healing'이나 ’remedy', 'therapy', 'treatment' 같은 것일 게다. 그런데 그들은 왜 치유를 ‘recovery'로 번역했을까? 또는 이들이 말하는 ’치유-recovery'란 무엇일까?
 
'recovery'라는 단어는 ‘본래의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recovery'를 운운하는 사람들은 ‘본래의 정상적인 상태’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지금 그 ‘본래의 상태’는 사라졌다. 또는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원래의 상태‘를 상실한 상태는 그들이 보기에 병적이다. 그러므로 ’recovery'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과제는 ‘병적인 상태’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된다. 이것은 'recovery'를 추구하는 <치유>展 작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치유>展의 젊은 작가들은 ‘병든 상태’에 유난히 민감하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병든 세계에 속해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그린(형상한) 이미지와 세계는 병든 세계를 닮아 병적이다. 또는 그것들은 세계를 병적으로 모사한 그들의 선배 세대 작가들의 이미지를 닮았다. 그 태도는 대략 두 가지 정도로 갈라질 것이다. 하나는 병든 세계에 속하여 아파하면서 그 아픔을 관찰하는 태도다. 못과 실이 복잡하게 난무하는 노희래의 작업이나 사각의 프레임을 억압적인 폐쇄공간으로 해석하는 강영욱의 작업, 겉과 속이 다른 광대의 웃는 얼굴을 파고드는 정운식의 작업이 그러한 계열에 속할것이다. 물론 이 작업들은 그 병든 상태의 극복, 또는 건강한 상태로의 회복을 염원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그 극복(회복)이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어쩌면 세계는, 그리고 ‘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병들어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인식에서 ‘회복’을 추구하는 일은 그러므로 일종의 헛된 시도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헛된 시도를 헛된 것으로 간주하여 중단하는 순간 모든 희망도 사라진다. 이것은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느끼면서(생각하면서) 회복을 추구하는 작업들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다. 이러한 계열에 속하는 작업들로는 죽음의 편린들(뼈들)을 가지고 생(生)을 재구성하는 송상훈의 작업, 구조적인 차원에서 ‘사랑’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싶어하는 백진기의 작업, 모든 소음과 허상을 걷어낸 근원적 성찰의 시간/공간으로서 ‘침묵’을 가시화하려는 이성민의 작업을 들 수 있다.

이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 ‘치유’는 소망되지만 실현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자리는 아픈 사람을 위무(慰撫)하거나 치료하려드는 건강한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차라리 마찬가지로 병든, 아픈 사람의 자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건네는 말은 빠른 치유와 회복을 약속하는 ‘힐링’ 또는 ‘테라피’의 감언이설과 구분된다. 그것은 차라리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염원하는 병든 사람의 언어에 가깝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이 ‘치유’를 'healing'이나 ‘therapy'가 아니라 ’recovery'로 번역할 이유일 것이다. ‘치유’를 염원하는 마음, 회복을 꿈꾸는 마음이야말로 병든 사람을 지탱하는 희망이다. 병든 세계와 더불어 아파하기, 그 아픔 속에서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회복’의 가능성을 찾기, 또는 꿈꾸기. 이것은 내가 읽은 <치유>展의 메시지다.
 
 
빨간벽돌갤러리
010-7477-1080
 
 

 
 
빨간벽돌갤러리
치유 治癒 Recovery
 
2014. 10. 1 ~ 2014. 10. 11
[조호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